크리소스톰 설교학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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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커뮤니케이션 사상의 기원에 관한 연구 (이범수)
박희춘 목사  (Homepage) 2007-07-10 17:01:06, 조회 : 6,806, 추천 : 1216

                                           서양 커뮤니케이션 사상의 기원에 관한 연구
                                                  -고대 그리스 레토릭을 중심으로-

                                                  이 범 수(동아대 교수․언론학)

I. 서론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 ‘설득 재주’를 내용으로 한 레토릭에 관한 저서가 현대 서양 학문의 대표적 고전이고, 그 내용이 동․서양의 언론사상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여러 학문 분야에서 연구․검증되고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고대 그리스 레토릭이 현대 서양 학문 및 언론학의 총체적 준거가 되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본 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연구 문제를 설정하여 고대 그리스 레토릭이 내포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사상을 체계적으로 분석․정리해 보고자 한다.

   1. 레토릭이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2. 레토릭 기술은 어떤 분야에서 주로 실천되었나?

   3. 레토릭이 커뮤니케이션학의 체계화에 기여한 바는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 설정의 근거는, 인간의 본질,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 정의로운 사회, 진리, 커뮤니케이션의 역할 등이 지금까지 인류가 제기했던 가장 중요한 질문들이라는 점에 있다. 이러한 질문 사항들이, 제반 사상을 조직하는 데 유용한 원칙이 될 수 있으며, 특정의 사상들을 의미 있는 맥락 속에 두고 이를 다른 사상가의 작업과 비교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1)에 이러한 질문 사항과 관련하여 본 논문의 문제를 설정한 것이다.

   사상에 대한 연구는, 당시 사상가들의 저술의 내용에서 통일된 판단 체계나 실천적 규준을 추출하여 정리하는 작업이다. 특정 사상가의 사고 내용에 깔려 있는 통일된 판단 체계, 시대적 현실에 대응하여 의미를 갖는 행동을 유발시킨 개인이나 집단의 실천적 규준 등이 사상의 요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의 요체들은, 어떤 시대이건 그 시대의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 및 민족의 정신 속에 거대한 망을 구축하여, 그 시대의 현실을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그 뿐만 아니라 사상은 당시 당시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보편적 지침이 되고 변혁의 동인이 된다.

   이러한 사상 또한 그 사상을 공유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위문법과 같은 보편적 구속력을 갖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커뮤니케이션 사상 역시 인간의 삶인 커뮤니케이션 환경에 대한 사상으로서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행위와 태도를 결정하고 유도하고 구속․규율하는 보편적 힘을 갖는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사상을 탐구하는 목적이, 커뮤니케이션 현실을 비판하고 커뮤니케이션 현상을 이해하고 인지할 수 있는 인식틀을 구성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은 커뮤니케이션 사상 연구의 당위성을 대변한다.2)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사상에 대한 연구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점을 올바르게 추출, ‘인간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의 발현’인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그 역사적 전개 과정에 따라 밝혀내는 단초이자 그 실천적 내역들을 규명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상이 새로운 발전의 길을 탐색하려고 할 때 그 방법은, 그 사상 발전의 길을 고전에 의거하여 설명하던가 아니면 고전을 새로이 해석하는 형식을 취한다.3) 본 연구 역시, 고대 그리스 레토릭이 내포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사상의 체계적 정리를 위해, 고대 그리스 레토릭 및 그와 관련된 저술들을 연구 대상으로 하여, 고대 그리스 레토릭 내의 커뮤니케이션 관련 내용에 대한 설명과 해석을 분석․정리하는 방법을 취했다.

   설명과 해석을 분석․정리하는 과정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사상으로서 그 기원적 의미를 우선적으로 찾으려 하였다. 고대 그리스 레토릭을 다룬 고전 내에서 커뮤니케이션 사상의 기원적 의미를 찾으려 한 이유는, 이런 연구 자세가 고전을 사상 연구의 텍스트로서 다룰 때 유의하여야 할 점으로서 연구자들간에 주지되어 있는 데다, 고전이 담고 있는 본래의 뜻이 판명되어야만 그 밖의 여러 해석들의 역사적 위치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고전의 본래적인 의미 또는 기원적 의미를 그 자체로서 파악하는 것은, 고전에서부터 그것을 해석한 사상에 이르기까지의 변화․발전을 망각하지 않는 각성 장치이고, 여러 가지 해석에 대한 사상적 위치가 정해지는 잣대가 되며, 사상의 발달 궤적을 쉽게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는 점 등등에서 간과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4)

II. 고대 그리스 레토릭에 나타난 서양 커뮤니케이션 사상5)

   1. 레토릭에 대한 최근 연구 동향6)

   레토릭의 기원, 발전 그리고 초기 실천 등이 근자에 나온 레토릭 관련 연구 업적들의 주요 주제이다. 고대 그리스(ancient Greece)에서의 레토릭 출현 그리고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에 걸친 그 이론과 실천 등이 1990년대 초반 5년 동안 나온 레토릭과 관련된 책과 논문의 내용이다.

   스피치 연구 또한 그리스 레토릭에 대한 평가와 그 양식의 적용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이루어지고 있는 고전적 레토릭(classical rhetoric) 연구도 그 중심이 화용론적 스피치(pragmatic speech)에 대해 이론화하고 가르치고 비평하는 데 있다.

   이러한 연구 경향은, 그리스의 레토릭과 웅변(oratory)이 포괄하고 있는 주요 주제에 대한 연구 및 검토와 접맥된다. 고대 레토릭(ancient rhetoric)의 역사와 이론을 탐구하고 이를 비판하면서 그 맥락을 살펴보는 작업의 내용에서, 웅변술(the art of oratory)의 초기 발전 및 실천과 관련시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대 레토릭의 이해를 위한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에 걸쳐 있었던 고대 레토릭의 실상이 밝혀졌고 그 결과  설득적 스피치에 대한 초기 연구 및 실행 내용 또한 드러나게 되었다.

   이상과 같은 개론적 연구(introductory discussion)의 목적은, 그리스 레토릭의 역사적 지적 조건들을 연구 대상화하는 데 있다. 많은 연구 업적에서 살려진 이러한 연구의 근본 취지는 그 연구들이 독창적(original)이라기보다는 통합적(synthetic)인 속성을 띠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레토릭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연구를 기원전 5세기 초 시실리 지방 토론 교사의 등장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현대 커뮤니케이션 사상을 당시 토론 기술자들의 가르침과 관련지워 검토하는 것도 유용하고도 적절하다 하겠다.

   2. 레토릭의 개념과 초기 역사

   스피치에 대한 하나의 개념(concept)이자 하나의 체계적 사고 방식(systematic way of thinking)이기도 한 레토릭이 고전주의 시대(the Classical Period, 기원전 4세기임이 분명하다)의 산물이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레토릭은 ‘특정의 수용자가 가능한 한 호의적으로 발신자의 메시지를 수용하도록 하려고, 말하는 사람이나 글 쓰는 사람이 의식적으로 자기가 사용하는 미디어를 조작하는 것’7)이며, 이러한 조작(manipulation, 操作)은 기원전 4세기의 전형적인 현상이었다는 견해가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는 자의 기술과 관련되는 지적 훈련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레토릭이라는 용어가, 플라톤이 「고르기아스」를 저술할 때 만들어졌다는 점 역시 그러한 주장을 설득력 있게 한다. 공중 앞에서 연설하는 사람이나 변호하는 사람을 가리켜 레톨(rhetor)이라고 했다는 기원전 5세기 초의 기록 또한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8)

   플라톤이 「패드루스」에서 나름대로 개념 정의를 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체계적으로 발전시켰으며, 데모스테네스 아시네스 등과 같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실천했던 레토릭이라는 기술에서, ‘무로부터 파생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ex nihilo)’는 사상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최고로 명성을 날리던 때보다 1세기 전에 이미 페리클레스는 노련하고 설득적인 웅변가(orator)로 이름을 떨쳤다.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그리고 기원전 5세기의 다른 소피스트들이 토론 기술(techniques of argument)을 가르쳤다. 그들 앞에 놓인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실천적 정치적 문제에 대한 토론을 가능하게 했고, 레토릭 기술(an art of rhetoric)도 더불어 가능하게 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납득할 만한 답변이 나오기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Archaic Greece)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개략적이긴 하나 기원전 4세기에 나타났던 레토릭 현상에서 가장 두드러진 요인을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곧 (1)그리스 내에서의 구술 전통 그리고 구두 문화에서 문자 문화로의 이행, (2)폴리스의 출현, (3)미토스(mythos)로부터 자연주의적 우주론으로의 이행과 그 당연한 귀결로서 과학적 합리적 세계관의 발전 및 철학의 발전 등이 그것이다.9)

   3.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 스피치와 글 쓰기 그리고 텍스트

   능변을 통해 결심과 행동을 고추세운다는 명제인 레토릭의 추진력(rhetorical impulse)은 그리스인들의 언어와 문화에 원래부터 배어 있었다. 「일리아드」 2권과 9권에 언급되어 있는 무수한 스피치들, 「오딧세이」에 담겨져 있는 음유 시인의 시들, 고대 시인들이 쓴 분방한 서정시들, 게다가 소피스트들의 웅변적인 「에피덱시스」, 비극 작가들의 음울한 시들, 희극 작가들의 재치 있는 언어 구사 능력 등등 이러한 모든 것들이, 그리스 사람들의 특성이 골고루 반영된 스피치의 힘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하겠다.

   레토릭을 탄생시킨 사회의 중요 특성 중의 하나가 ‘레토릭이 형성되고 창조되는 단계에서는 전적으로 비문자적(nonliterate)이었다...고대 그리스가 소유했던 것은 놀라울 정도의 세련되긴 했으나 비문자적 언어였다’.10) 미케네 문명이 몰락(기원전 11세기)하고 난 뒤에서부터, 8세기 중엽 음성 알파벳(the phonetic alphabet)이 나타날 때까지, 그리스는 오로지 구술 문화의 시대였다. 그리스에서는 문자의 재발견 이후에도 몇 세기 동안은 커뮤니케이션이 주로 입말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입말 커뮤니케이션은 작문뿐만 아니라 듣기 및 생각하기와 같은 활동까지 이루어지게 하였다. 「헬렌 예찬」에서 고르기아스가, 정신에 미치는 스피치의 효과는 육체에 미치는 약의 힘과 같다고 했는데 이는 바로 ‘스피치는 힘있는 군주다(Speech is a powerful lord)’라는 문화적 진리의 표현이었다. 처음에는 시에서 나중에는 산문에서도 활용된 변론술(oral eloquence)의 힘은 공공 생활(public life)에서 뚜렷하게 드러났고, 이를 경험한 사람은 이에 감동을 느끼면서 즐기기도 했다. 이들이 바로 스피치의 세련된 소비자가 되었다. 원시 레토릭 시대(proto-rhetorical age)의 변론술은, 결과적으로 고전주의 시대의 레토릭 문화를 가능하게 했던 커뮤니케이션 습관 및 그 취향들을 창조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변론 기술을 써먹을 수 있었던 대상인 청중을 바로 그 변론술이 만들어냈기 때문이다.11)

   레토릭의 선례에서  드러난 두 번째 형성 요인은 글 쓰기(writing)의 재 발명이었다. 문자가 대중의 의식을 표현하는 양식으로서 기존 구술의 자리를 차지할 때까지 수세기가 걸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 문화의 도래는 스피치의 객관화를 불러 일으켰다.12) 스피치의 객관화 가능성이란 결국 말로 하는 설득 기술(an art of oral persuasion)의 교수 및 학습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청중으로부터 기대된 효과를 거두고자  언어를 의식적으로 조작하는 것을 레토릭의 본질로 간주한다면, 글쓰기를 통한 스피치의 객관화는 그 선결조건이 된다. 언어를 의식적으로  조작한다는 것은 표현의 수단인 매체(medium)를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자로 기록된 텍스트는 그 자체의 생명력을 가지는데, 그러한 살아 움직임을 통해서 텍스트 그 자체는 연구되고 비판되고 수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표현은 메시지가 되고, 같은 맥락에서 궁극적으로 사람들은 효율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전략으로 표현이라는 선택적 수단을 취한다.

   4. 정치커뮤니케이션: 화술, 대중연설13)

   레토릭 기술은 문화 공백기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 시대의 정치적 발전 및 활동의 결과였는데 어쩌면 그 이전에 벌써 이러한 기술이 생겨났을 수도 있다. 고르기아스의 주 관심 분야를 화술(the speaker's art, he rhetorike techne)이라고 한 플라톤은 화술 관련 장인 기술의 산물이 바로 행동 양식이라고 했는데, 그러한 행동 양식은 기원전 4세기보다 적어도 2세기 전에도 그리스에 있었던 바, 이러한 점이 레토릭 기술의 발생 연대를 앞당기는 근거가 된다. 일부 학자들은 레토릭의 뿌리를 청동기 시대(기원전 1100년- 750년) 이전인 암흑시대 족장 지배에서 찾기도 한다. 기원전 7세기에서 6세기에는 아테네와 여타 도시국가에서 입법 및 사법의 발전이 이뤄짐에 따라, 공적 문제(public issues)에 대해 강력하게 청중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힘을 높이 평가하는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한다.

   아테네가 그러한 예를 보여준다. 암흑시대인 지방 왕권 체제에서 고전주의 시대의 민주적 폴리스 체제(poleis)로의 이행은,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공적인 의사 결정 분위기의 성숙과 맥을 같이 한다. 기원전 8세기 암흑기에 나타났던 그리스 공동체 사회는 가장 간단한 정치 조직의 형태였다. 지방의 귀족 군주들(the basileis)은 어떤 형태의 중앙 통치 방식도 달가워하지 않으면서 애써 자율성을 지키고자 했다. 그들은 가족, 씨족 그리고 추종자들에 대한 충성심을 으뜸으로 쳤다. 지방 군주들(the basileus)은 대부분 귀족 우두머리들로 구성된 ‘원로원(council of elders)’의 자문을 받았다. 아테네에서는 이러한 그룹들을 가리켜 ‘아레오파고스 의회(the Council of the Areopagos)’라고 했는데, 그 의회가 처음 소집되었던 장소인 아고라(the agora)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바위로 된 ‘아레스 언덕(Hill of Ares)’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아테네에서 얼마나 오래 동안 군주제(monarchy)가 지속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고대의 작가들 사이에서는 코드루스(Codrus)라는 이름이 자주 거명되기는 하지만, 마지막 군주의 이름조차도 기록에는 없다. 하지만 기원전 7세기 전에 일어났던 변화 때문에 왕권이 더 이상 예전 같지는 않았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바실레우스라는 직함이 종교 의식과 관련된 신성한 의무와는 별개의 업무를 담당하는 직책에 붙여진 반면, 실권은 귀족들에게 이양되었는데 그들은 군주들의 특권을 그들의 특권으로 바꿔놓았다. 그러한 권력 찬탈이 전체 귀족들의 합의 하에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힘있는 특정 씨족에 의해 이루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 방법이야 어떠했건 간에, 점점 왕권이 약화되었다.

   평의회(the Council) 내에서 여러 종류의 정치연설이 이루어졌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당시 평의회는 법적 정책적 문제들을 심의․의결하는 의사결정기관이었다. 아테네의 민회(the ekklesia)는 초기에는 형식적으로 존재했다. 다른 인도-유럽종족의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듯이, 데모스들(the demos)은 위기 시에 이에 대한 자기들의 공식 입장을 천명하게끔 되어 있었으나, 군주제 하에서는 이러한 초기 평의회는 투표권을 행사하는 식자층의 모임이라기보다는 선동적 속성의 부족들이 갖는 집회에 가까웠다.

   솔론(Solon)은 기원전 6세기 초 이런 상황 속에서 출현하였다. 귀족이면서 상인이었던 솔론은 입법자 및 중재자로서의 역할이 그들의 업무로서 아테네 사람들에 의해 선출되었다. 플루타크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상세하게 묘사했듯이, 솔론은 기원전 594년의 헌법 개정을 주도했는데, 그 개정 헌법은, 재산 정도에 따라 이루어진 아테네 시민들 사이의 정치 계급 조직을 만들었던 바, 또한 이 법은 이전 군주의 힘을 갑부들이 뽑은 집정관(magistrates, the archons)에게로 분산시키는 그런 정치 구조를 만들었다. 게다가 초기 민회를 구성하기 위해 모였던 민중들(the folk)은 정규적 조직체로 대체되었는데, 이 조직은 집정관 선출에 일정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제안된 법률의 심의 의결에 대해 원칙적인 책임을 졌다. 이 회의(assembly)에는 상당한 재력가만이 참여할 수 있었고 공무원 피선거권도 귀족계급만이 갖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아레오파고스 의회는 종교 문제 판결과 살인죄 심리를 한 반면, 솔론은 제2의 회의체인 400인회(the Council(Boule) of Four hundred) 구성원이었다. 아테네 4대 ‘부족들(솔론에 의해 만들어진, tribes)’들이 그 구성원이기도 했고, 보울레는 모든 정책 과제와 제안 법률들을 검토했고, 에클레시아에서 표결에 붙여야 할 안건을 정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보울레는 아레오파고스가 귀족정치를 하는 동안 누렸던 그런 특권을 양도받았던 것이다. 솔론 제도 아래에서 비로소 헌법 개정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이는 정치 과정에서 대중(public)이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된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이러한 참여는, 고전주의 시대 정치 행위의 지배적 형태였던 대중 연설(oratory in a public setting)이라는 그런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솔론에 의해 이루어졌던 개혁은 페이시스트라티드 참주정치(tyranny) 기간 동안에도 유지되었고, 기원전 6세기말 클레이스테네스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클레이스테네스 개인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으나 누군가를 아테네 민주주의 시조로 꼽는다면 바로 그가 되겠다. 솔론과 페이시스트라토스는 간접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한 길을 닦았으나, 데모스가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것은 기원전 510년에서 507년 사이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때였다. 그는 정치 참여의 기준에서 재력을 배제하고 그 재력 대신에 혈통과 주거를 기준으로 삼았다. 즉 아테네인을 아버지로 한 노예가 아닌 남자로서 아테네의 폴리스에 거주하는 자에게 시민권과 참정권을 주었던 것이다(기원전 451년 페리클레스 시민법 제정 이후에는 순종 아테네 혈통의 남자만이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취득하였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솔론의 구성원인 4대 부족을 10대 부족(phylai)으로 대치했는데 이들 각 부족들은 아티카 전체 인구를 고르게 대표했다. 그는 상위 3개 계급 성원들로 구성된 400인회를 폐지하고, 10대 부족의 각 부족에서 50명씩 선출한 500인회(a Council of Five Hundred)로 이를 대치했다.

    클레이스테네스 개혁의 목적은 귀족 가문들이 정치적으로 서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었으나, 그 결정적인 효과는 모든 아테네 (남자) 시민에게 정치 제도가 개방된 것이었다(설사 농민을 비롯한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권익 대변에는 실질적인 제약이 있었지만). 이것이 기원전 5세기 초에 시행된 제도였는데, 이 세기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성숙기이자 페리클레스의 부상기이며 아테네 제국의 출현기였고 (꼭 일치하지는 않지만) 효과적인 웅변술의 원리가 교육될 수 있는 하나의 기술로서 최초로 체계화된 시기였다.

   이런 모든 점에 비추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정치 행위의 한 양식으로서 대중 연설(public speaking)을 부각시킨 정치적 사회적 상황은 고전주의 시대보다 일 세기 정도 앞섰을 뿐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중들의 정치 토론이 민중 정부의 요구로 고전주의  시기에 꽃을 피웠다면, 그 실천은 주로 그러한 정치 제도의 토대가 되었던 고대시기부터 이루어졌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했던 대중 설득이라는 실천과 마찬가지로, 기원전 4세기에 나타난 레토릭 기술 역시 이전 시대의 정치 발전 배경을 염두에 두었을 때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고대 에클레시아 및 보울레에서, 소피스트들의 로고이(logoi)가 정치적 도구로서는 처음으로 정교하게 되어 적용되었던 제도였다는 점을 알아낼 수 있다.

   5. 레토릭의 본질: 토론, 증거, 개연성 그리고 이성적 담론

   여기에서 마지막으로 고려되어야 할 요점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미토스에서 로고스까지(말하자면 신화시대 신들의 발생 계통학에서 자연주의 우주론까지) 옮겨가는 과정에서 레토릭의 발전이 행한 역할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다. 공적 정치 토론 기술이자 공적 담론 이론으로서 레토릭은, 언어를 신화적으로 사용했다기 보다는 합리적으로 사용했던 시기인 고대시대에 발전했기 때문에 기원전 4세기에 들어 가능하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레토릭 기술에 대한 그의 논문은 레토릭 기술의 고전적 이론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이면서 가장 충분히 표현한 것이었다)가 간파했듯이 레토릭 이론 및 기술의 본질은 토론, 증거 그리고 개연성이었다. 이러한 언어적 요소들은, 그리스 최초의 ‘원조 철학자들(proto-philosophers)’의 탐구와 숙고에 의해 발전되고 정착되었는데 이들 철학자들은 합리적 세계관을 처음으로 개발했고 추상적이면서 분석적인 구문과 어휘를 발전시켰다.14)

   신화 및 시로부터 우주론 및 분석적 산문으로의 이행은 인류 지성사의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심오한 변화들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이행이 자연세계의 기원과 작동에 대한 설명을 하게 했다. 하지만 신화도 자연세계의 기원과 작동을 설명했는데, 어떤 절대적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 초자연적 존재의 의지가 자연과 인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그러한 관점에 기반 했다. 이러한 설명-호머와 헤시오드의 서사시, 영웅 시대에 대한 구전 설화의 기록과 재구성-의 기본 형태는 개념 정의 및 정당화를 위한 매체가 아니라 보존과 영감을 위한 매체로서의 성격을 띠었다. 신화적 의식-헤시오드의 「신통기」에서 이에 대한 가장 충분한 그리스 식 표현을 읽을 수 있다-을 통해서, 세계에서 신들의 변덕과 경쟁과 짝짓기가 인간이 휘둘린 역사를 창조했다는 그러한 신들의 업적들을 보았다. 그러한 신화적 의식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의 세계이다. 그리고 해를 못 뜨게 하고, 봄을 못 오게 하며 그리고 인간을 비인간적 모양으로 변신시킬 수 있는, 그러한 존재의 행동에 의해, 얼마든지 번복 가능한 것으로 관찰된 경험의 규칙성 또한 그 세계 속에 있었다.15)

   신화의 민담식 및 대화식 구조와는 달리 이성적 담론(reasoned discourse)은, 행위(action)보다는 귀인(attribution, 추정 결과)을 표현하는 비인칭(impersonal) 명사 및 동사의 용례로서 이루어졌다; 더욱이, 그러한 이성적 담론에는, 사건들(events)이 내적 단순 일관성(종합하자면 합리적인) 원리에 따라 질서 지워진다는 그런 세계관이 주로 엮여져 있다. 코스모스는 로고스에 의해 질서 지워진다. 이론 및 토론의 언어는 계보학 및 묘사의 언어가 아니라 추상, 개념 정의 그리고 연역적 추론의 언어이다. 이러한 종류의 언어는 아리스토텔레스 및 플라톤 이전에 정리되지도 않았고, 이 두 사람보다 앞서 살았던 소피스트들의 시대에도 정리되지 않았다; 단지 그 언어들은 발명되어야 할 대상으로 있었다. 개연성 있는 토론이라는 지적 건축물로서, 이론적 설명이 가능한 용어의 발명은 소크라테스 이전 사상가들의 업적이었다.16)

   이러한 업적 중의 하나-자연주의적 세계관의 창조-가 이오니아 사상가들의 초기 저작에 내재되어 있으며 헤라크리투스의 작품에도 잘 드러나 있다. 그러한 자연주의적 세계관의 발전에서 탈레스가 크게 기여한 것은, 세계 자체의 기원과 본질은 물이다라는 그의 주장이 아니라 세계는 단일 질료로 구성되었다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발상 덕분에 아낙시만드로스와 그 이후의 사상가들은 보다 더 추상적이고 세련된 명제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그들의 관심은, 보편적이고, 몰인간적(impersonal)이며, 신성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합리적인(즉 규칙적이고, 측정 가능하며, 일관성이 있으며 예측 가능한) 아르케(arche)의 본질이 어떻게 작동하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요소 기원설 혹은 인과설이었다.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고 그 세계를 코스모스로 만드는 것이 그러한 아르케의 존재이다. 훗날의 자연철학자들처럼 이오니아 우주론자들이 심취했던 것은 이러한 질서 원리(ordering principle)의 작동(operation)을 체계화하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모든 천계의 근원인 어떤 ... 무한적인(apeiron, 무한자) 자연이건 그리고 필요에 따른 ... 천계 내의 코스모이(kosmoi)이건’, 혹은 aer의 밀집과 파열이든, 혹은 ‘모든 것이 두루 통하는 것’과 일치하는 로고스이건 간에.17)

   개연성의 개념(idea)은 그러한 합리적 세계관에 근거한다. 한가지 일이 개연적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는 상대적으로 규칙적이고 일관된 방식으로 움직여야 한다. 자연의 사건들이 신인동형화된 신들의 행동 및 선호 대상(preferences)에 대한 단순한 언명이든, 그러한 존재가 불규칙적이고 일관되지 않은 방식(그리스 사람들의 눈에 비치기로는 분명히 그랬다)으로 행동하고 지시하든, 그럴 때, 어떤 사물의 잠재적 사건 발생(the potential occurrence)이 과거의 규칙성이라는 토대 위에서 다른 사물의 그것보다 다소 개연적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는 없다. 기원전 6세기 이전에는 개연적 추론의 근거가 없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것은 이렇다. 즉 사고 및 설득의 이러한 양식들이 (합리적이지 않은) 어떤 모종의 세계관을 요구하는데, 그런 모종의 세계관이 기원전 6세기에만 나타났다는 것이다.18)

   사건의 단일성(unity)과 규칙성(regularity)을 천명하는 세계관과 더불어, 공적 토론(public argument)의 한 이론이자 기술인 레토릭의 발전은, 소크라테스 이전 사상가들의 업적이기도 한 언어 그 자체의 풍부성(enrichments)을 필연시 했다. 특히 레토릭의 피스테이스(the pisteis of rhetoric)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에서 소크라테스 이전의 유산을 찾아낼 수 있다. 청중의 동의를 확보하기 위해 웅변가가 사용함으로써 레토릭의 증거들(the proofs of rhetoric)은 “일종의 증명(demonstration)”19) 기능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증명으로 취해지는 형식은 논증법(enthymeme), 연역적 토론(deductive argument) 방법 등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토론(argument)을 두고 “스피치 그 자체를 구성하는 단어들에 의해 제공되는 증거, 혹은 명백한 증거(proof, or apparent proof, provided by the words of the speech itself, 1356a3-4)”20)라고 기술하면서, 그는 언어의 한 용례를 특징지었다. 그 용례란 다름 아닌, 특정 개념에서부터 논리적으로 다른 개념들이 따라나오게끔 그 특정 개념이 구조화되고 표현되어진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레토릭적 토론(rhetorical argument)은, 언어 그 자체의 본질에 내재한 연역적 논리의 원칙들을 구체화하고 있는데, 그 원칙들이란, 아리스토텔레스가 레토릭 기술의 요소들을 체계화하려고 했던 시기보다 한 세기 반 앞서서, 파르메니데스와 엠페도클레스가 처음으로 규정해서 썼던 원칙들이었다.  

   레토릭적 증명(rhetorical demonstration)의 필수적 양대 요소인 분석적 사고와 연역적 추론(deductive reasoning)은, 행위를 나타내는 미토스적인 동사들이 분석을 표현하는 동사(to be, einai, 존재하다)로 대체되어지는 그런 통사론(syntax)을 필요로 한다. 합리적으로 질서 지워진 우주(kosmos)의 “과거 존재, 현재 존재, 미래 존재(was and is and will be)” 속에서, 되어감(becoming)과 소멸함(dying away)의 동사 그리고 하고 있음(doing)과 행동함(acting)과 발생함(happening)의 동사들은, to be 동사인 무한 현재로 대체되어져야만 할 것이다: “특정의 각들은 두 개의 직각과 등치로 존재한다(are). 그 각들은 그런 방식으로 생겨났거나, 되어가거나,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21)

   6. 토론의 이론화: 개념 체계와 전문 용어

   연역적 추론의 발전 그리고 이에 따른 논증법적 토론의 발달이, 분석적 통사론의 발명 및 합리적 세계관의 발명을 필요로 했다면, 토론에 대하여 이론화하는 능력은 철학적 어휘의 발명을 요구했다. 사상 및 스피치의 구조 및 기능을 모색하고 기술하기 위해서는, 모색하고 기술하는 용어인 일련의 개념적 범주(conceptual categories), 즉 추상적 어휘를 필요로 한다. 레토릭적 토론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서 요구되었던 것은, 그로 하여금 레토릭을 설명하는 이론적 원리들을 포착하고 밝혀내게 한 그런 개념 체계(conceptual system)와 전문 용어(terminology)였다. 이것은 “제 1 원리“(first principle, arche), "개연성”(probabilities, eikota), "보편“(the universal, to kathololu)" 등과 같은 그런 관념들(ideas)을 포함한다. 그러한 추상적인 어휘의 발전, 그리고 그 관념들이 표현하는 개념들(concepts)의 발전은, 소크라테스 학파 이전 사상가들이 이룬 또 하나의 공헌이었다.22)

   논증법에서 “특수성(the particular, to kata meros)", "개연성“, ”보편성“ 등을 강조한 것과 더불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증법에 대한 논의에서도 반영되었듯이, 개념적 전문 용어의 정형화(fashioning)는 초기 그리스 사상가들이 만들어낸 언어에 대한 두 가지 변형(modifications)의 결과이다: 특정 명사와 연결하여 중성관사 to를 붙이는 것, 그리고 추상적 개념을 표현할 때 그 용례가 가능하도록 한 그런 전문 용어의 ”의미 확장(stretching)“에 영향을 미치도록 한 이들 명사들과 다른 명사들의 은유적 사용 등이 그것이다.23)

   신화에서는, 태양, 달, 지구, 바다, 하늘, 바람 등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사물들이, 인간 경험 및 활동의 특정한 중요 영역 위에 머무는 남성적 혹은 여성적 존재로 의인화되었다: 그래서 ho helios(태양, 남성), he selene(달, 여성), he gaia(지구, 여성) 등으로 된 것이 그것이다. 남성/여성에서 중성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리스어는 철학에 근거한 추상 개념들을 표현하는 자체 능력을 두고 토론이 이루어졌는데, 그 철학이란 세계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제공하고자 노력하는 와중에 나온 것이고,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레토릭적 토론 혹은 증거라는 개념을 배태하고 밝혀내려고 노력한 가운데 나온 것이었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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