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소스톰 설교학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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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하는 이유" (설교동영상과 설교문)
박희춘 목사  (Homepage) 2009-06-23 00:48:12, 조회 : 2,685, 추천 : 344
- SiteLink #2 : http://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richard+park+why+should+we+sow&search_type=&aq=f
- Download #1 : 눈물로_씨를_뿌려야_하는_이유.hwp (53.0 KB), Download : 73
  Have no Movie Picture!!

2009년 6월 21일 마천중앙교회 저녁 헌신예배에서 한 설교입니다.
다운로드하여 읽으실수도 있습니다. 설교동영상을 보시려면 위의 링크로 가셔서 유투브로
보실수있고 혹은
http://www.macheon.or.kr/contents/board/index.aspx?Op=bv&MenuId=169&id=61¬icenum=54¤tpage=0
으로 가시면 됩니다. 아래는 설교문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하는 이유

박희춘목사

시 126:1-6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리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아 얼마나 위대한 말씀입니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때로 그 백성을 포로로 끌려가게도 허락하시지만 다시 자신의 백성을 그 고난의 포로로부터 돌리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바벨론 유배!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선민인 이스라엘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자신의 택한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허락하시고 두고 보실수 있단 말인가? 때로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에게는 이러한 포로기가 다가옵니다. 악몽같은 삶과 나날들! 최악의 위기가 닥치기도 합니다. 수치와 멸시의 시간들! 죽고 싶어도 죽을수 없는, 죽음조차도 외면해버리는 처절한 포로기의 시간들이 하나님의 선민들에게도 닥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때에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버리지 마십시오. 곧! 곧! 곧 하나님은 다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30:5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시편 30:11입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찬양받기 합당하신 우리 은혜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노염은 잠간이고 하나님의 은총은 평생입니다. 잠시 저녁에는 울음이 있을지라도 곧 아침이 오면 기쁨을 보내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좋으신 우리 주님을 이 저녁에 찬양합시다.

하나님이 곧 우리의 포로를 돌리실 것입니다. 포로의 상태를 바꾸실 것입니다. 돌리신다고 할때 그것은 변화를 의미합니다. 미국의 처음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의 선거 캐치프레이즈는 “변화”(change)였습니다. 오바마가 내세운 “변화”라는 선거슬로건은 변화를 갈구하는 미국 백성들에게 크게 호소했습니다. 그가 선거운동을 하면서 다닌 선거장에는 곧곧에 “변화”(change)라는 큰 글씨가 사방에 붙여있었습니다. 미국 백성들이 얼마나 변화를 희구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비록 흑인이었어도, 그가 비록 미국인들이 싫어하는 모슬렘의 이름을 가지고 있어도, 그가 비록 진보주의의 민주당이었어도 미국의 수많은 백성들은 변화를 갈망했고 그는 초대 미국 흑인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변화를 갈망합니다. 변화를 희망합니다. 특별히 고난가운데 있는, 포로기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시온의 포로를 돌리시는, 포로기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갈망합니다. 경제적 위기가 바닥을 친후 다시 돌아서 그 위기가 변화하듯이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본문에 주체가 우리가 아니고 “여호와께서”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사”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실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고 그래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할렐루야!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돌이킬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어둠을 몰아낼수도 없습니다. 포로상태에 있는, 죄와 저주아래, 흑암의 권세아래, 비진리아래, 미움과 증오아래, 탐욕과 시기아래, 좌절과 절망아래 포로가 되어있는 우리를 우리 자신이 변화시킬수 돌이킬수 없습니다. 누가 할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주체가 바로 여호와인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 1절에 가보면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고백합니다. 너무 좋아서. 너무 좋은 일이 많이 생겨서. 너무 놀라운 일이 생겨서. 기대하지 못했던 엄청난 일이 생겨서.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로기에 있을때는 너무 현실이 비참해서 너무 나의 현재의 모습이 초라해서, 너무 나의 현실이 믿을수 없어서 “제발 이것이 꿈이기를 바래”라면서 우리의 살을 꼬집어 보기도 합니다. 제발 이 비극적 사건이, 이 비참한 일들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라고 합니다. 때로 우리의 삶에 우리가 원치않게 너무나 슬픈일들이 많이 자주 발생합니다. 너무나 아픈 일들이 많이 자주 발생합니다. 무참히 파괴되고 무참이 짓밟히고 무참히 무너지는 슬픈고 아픈 일들이 우리의 삶에는 자주 발생합니다. 그래서 꿈이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1절의 “꿈꾸는것”은 너무나 기뻐서 외치는 표현입니다. “우와, 이것은 정말 꿈만같다!” “꿈인가 생시인가” 우리 하나님은 악몽같은 고난의 포로에 있던 우리를 돌리셔서, 변화시키셔서 꿈꾸는것 같은 기쁨의 축복으로 바꾸어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이신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우리는 찬양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꿈꾸는것 같다라는 표현은 비현실적인 것이 발생할 때 흔히 쓰는 표현입니다. “비현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질수 없는 일들이, 상식적으로는 가능하지 않는 일들이, 기적같은 일들이, 아니 실로 기적들이 우리의 삶에 발생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기적의 창출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볼때 비현실적인 놀라운 기적같은 일들을 우리의 삶에 만들어내시는 분이신것입니다.

이번에 3년만에 아니 어쩌면 지난 3년전에도 잠시 한학기동안 장신대에 교수로 있을때 성도들과 교제할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제가 미국에 나가있은 12년동안 단 한번 한국에 들어왔던 2000년도를 빼면 거의 10여년만에 마천중앙교회 성도들과 그들의 삶에 일어나 놀라운 일들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저는 아주 깜짝 깜짝 놀랐습니다. 저에게 여러 마천중앙교회 성도들이 나누어주는 간증들은 가히 압권이었습니다. 아니 그럴수가! 아니 그럴수가! 오 하나님! 하나님은 과연 위대하십니다. 우리 마천중앙교회 성도들의 삶에 지난 15년 동안 일어난 변화는 그야말로 꿈꾸는것 같은 축복의 변화였습니다. 제가 군목제대후 마천중앙교회를 떠나 소망교회 교육목사로 가고 그후 미국으로 팰리세이드교회 부목사로 이민와 유학을 떠난후 그것인 1997년이었는데 12년만에 듣는 마천중앙교회 성도들의 축복의 간증들은 거의 기적에 해당되는 수준이었습니다. 한두분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 역사하셨는지 어떻게 그들의 포로를 돌리셨는지 어떻게 꿈꾸는것 같은 축복을 주셨는지. 정말 15년 전에 제가 알고 있었던 성도들의 삶이 얼마나 위대하게 축복으로 변화되었는지 저는 하나님앞에 감사하고 찬양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제 귀를 의심하기도 하였습니다. “우와, 우와, 우와, 그럴수가, 그럴수가” 하나님은 정말 좋으신 분이고 위대하신 분이구나 함께 고백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감격하여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오늘 본문 2절을 가봅시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대사를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소사를 행하시는 분이 아니고 대사를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풀어 말씀드리면 위대한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마천중앙교회에서 주일학교 어린이 교육전도사를 할때 겨울방학이 되면 어린이 새벽40일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린이들 한 7명정도가 꾸준히 40일을 나와서 새벽에 구교회 지하의 기도실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중에도 한번도 빠지지 않던 세명의 어린이들이 있었는데 저는 그때 그들에게 하나님께 자신들의 미래를 맡기도록 기도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엄마 아빠를 위해서 기도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저는 우연히 그 세명의 한번도 어린이 40일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던 어린이중 한 어린이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은 평신도 사역자요 선교사인 그가 하고 있는 일들을 들으면서 저는 기절할뻔 하였습니다. “우와, 우와, 우와” “세상에 이런일이” “하나님이 이렇게 위대하게 쓰실줄이야” 아직도 젊은 평신도 선교사 사역자이지만 그가 전국교회를 방문하며 수많은 사람들앞에서 강의하고 도전하는 이야기들. 신학을 한것도 아닌데. 남자 목사도 아닌데. 한국교회의 남성위주의 편견의 벽을 넉넉히 뛰어넘어 전국의 교회들을 다니며 강의하고 선교를 도전하는 일에 그 어린 소녀가 이렇게 쓰일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는 말문을 잃었습니다. 10년, 20년전에 그들이 하나님앞에 심은 기도의 씨앗들이 결실하고 추수를 벌써 하고 있는것입니다.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의 가정과 자녀들 그리고 그들의 기업을 축복하시고 변화시키신 수많은 간증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할수 있는, 이성적으로 추측할수있는 수준의 일들만을 하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가 상상할수도 없는 놀라운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출애굽기 14:13 그래서 말씀합니다. “모세가 백성게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홍해가 가로막고 있을때 인간의 상식으로 그 바다를 건너갈수 없을때 모세는 지도자로서 하나님이 하실 위대한 일들, 대사를 행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도 이러한 대사를 이미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현재속에서 대사를 행하시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과거에 대사를 행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기쁩니다. 하나님이 대사를 행하실것을 바라보고 미래에 장차 행하실 하나님을 믿고 바라며 기도하는 씨뿌리는 하나님의 농부로서 땀을 흘린 자들은 반드시 대사를 행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게 될것입니다. 히브리어 시제중에 “예언적 완료”라는 시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는 미래에 벌어질일들을 과거시제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안에서는 시간이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에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가 동일합니다. 하나님이 하실일들은 그래서 미래로 표현되지 않고 이미 일어나 과거로 표현합니다. 믿음의 언어입니다. 확신의 언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미래의 약속은 이미 이루어진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과거로 표현합니다. 때로 우리가 씨를 뿌릴때 우리는 미래에 장차 하나님이 역사하실것을 바라보도 소망으로 씨를 뿌립니다. 현재 아무것도 없어도.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뵈어도,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들려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씨를 뿌립니다. 눈과 귀에 아무 증거없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씨를 뿌립니다.”

마천중앙교회 수많은 성도들에게 지난 10여년동안 엄청난 하나님의 기적같은 축복, 꿈꾸는것 같은 축복들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가정 가정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군목으로 가기전까지 알던 성도들의 삶, 그저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뵈어도,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들려도” 믿음으로 눈물의 씨앗을 뿌리던 성도들이 기쁨의 추수를 한것입니다. 흔히 이야기하지요. 예수님 올바르게 철저히 잘 믿고 신앙의 씨앗을 뿌린지 10년이 지나서 하나님의 변화의 축복을 받지못하는 성도들이 없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여러분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여러분 바로 옆에 있는 성도들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을 하신분들, 눈물의 씨앗을 10여년 정도 잘 뿌리신분중에 하나님의 변화의 축복을 체험하지 못한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혹 있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소수의 예외가 있다해도 그분들의 아직도 포로기에 있다해도 혹 다시 포로기로 되돌아 간분들이 있다해도 저는 그분들까지도 “위장된 축복” “고통의 축복” “성장과 연단의 더욱 값진 축복”에 있다고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 잘 믿고 신앙의 씨앗을 잘 뿌린 10여년후에는 성도들의 삶에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꿈꾸는것같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죄와 저주, 죽음과 사탄의 포로에서 해방됩니다. 믿습니까? 믿으십니까? 믿겠습니까? 할렐루야!

오늘 본문 5-6절로 가봅시다.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할렐루야! 여기서 눈물을 흘린다고 했는데 왜 눈물을 흘립니까? 너무 힘들때 우리는 눈물을 흘립니다. 내 삶이 초토화 되어서, 아무것도 남지 않아서, 너무 고통스러워서, 너무 힘들어서 우리는 눈물을 흘립니다. 아마 그 씨앗이 마지막 양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씨앗을 주님앞에 심고 나면 먹을것이 하나도 없어 굶을수밖에 없는 상태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눈물은 용기의 눈물일수도 있습니다. 내가 여기서 포기할순 없지.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나야지. 이 포로기의 시련에 무너지면 안되지. 하나님앞에 신앙의 씨앗을 심어야지.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며 충성의 씨앗을 뿌려야지. 그 눈물은 믿음의 눈물입니다. 믿을수 없는 상황,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뵈이고,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들려도. 모든 것이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도 오직 믿음만을 가지고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앞에 신앙의 씨앗을 심을때 우리는 믿음의 눈물을 흘립니다. 하나님,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이 하실것을, 주님이 도와주실것을, 주님이 역사하실것을 제가 믿습니다. 저의 믿음없는것을 용서하옵시고 저의 믿음없는것을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

그 눈물은 최선의 노력의 눈물입니다. 힘에 겹도록, 죽도록,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노력의 눈물을 흘립니다. 여러분, 한계상황에 까지 가도록 주님앞에 신앙의 씨앗을 뿌리십시오. 적당히가 아니고, 최선을 다하여, 죽도록 충성하는 씨앗을 뿌리십시오. 어차피 예수 믿을 바에 철저히 믿으십시오. 지난주 새생명축제를 하였습니다. 새롭게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등록하신 새로운 성도님들에게 권면합니다.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올바르게 신앙생활하십시오. 철저히 신앙생활하십시오. 신앙의 씨앗을 10년만 잘 뿌리십시오. 반드시 여러분의 신앙의 씨앗을 기쁨으로 추수할 때가 올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슨 씨앗을 뿌려야 하겠습니까? 첫째, 기도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눈물의 기도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5:7에는 예수님도 눈물의 기도의 씨앗을 하나님앞에 뿌리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심지어 예수님까지도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앞에 기도의 씨앗을 뿌리셨다면 하물며 우리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도 미래에 하나님이 하실일을 믿음으로 바라보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여기 “구원하실”이라는 미래형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직 이루어 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기도의 씨앗을 뿌리신 것입니다. 여러분! 눈물의 기도의 씨앗을 뿌리십시오. 귀신들도 때로 부모들이 많이 눈물의 기도의 씨앗을 뿌린 자식들을 알아보고 두려워합니다. 그들뒤에 부모의 기도의 씨앗이 많이 뿌려져 있는것을 귀신들도 알고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신앙의 실재입니다. 새벽기도! 때로 우리가 왜 새벽기도를 해야하는지 궁금할때가 있습니다. 왜 기도를 해야하는지!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새벽에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의 포로기를 바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도록 하나님이 주체로 역사하시도록 간구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기도외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수 없습니다.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수천마리의 짐승을 죽이는 제사로도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수 없으나 하나님을 향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하고 움직입니다. 기도는 하늘보좌를 흔듭니다. 히스기야왕처럼 기도는 죽을 영혼도 다시 살립니다.

저는 미국에 살 때 저희 집 뒤뜰에 화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홈디포(Home Depot)라는 상점에 가서 한통의 씨앗을 샀습니다. 그 씨앗의 이름은 “잉글리쉬 가든(English Garden)"이었습니다. 여러종류의 다양한 색깔과 형태의 꽃들이 사계절에 걸쳐 두루두루 종류별로 다양하게 알아서 꽃을 피우도록 하는 씨앗묶음이었습니다. 그저 그 통의 씨앗을 두루 두루 뿌려놓으면 그 씨앗들이 계절을 따라 계속해서 다양한 한들한들 거리는 다양한 꽃들을 피웁니다. 노랑, 파랑, 자주, 분홍, 청색등. 무질서속의 질서가 있는 화단을 스스로 만듭니다. 바로 그 씨앗때문에! 서울에 와보니 잠실에서 종합운동장까지의 길가운데 이 잉글리쉬 가든이 있는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겨울이 지나 봄을 기다리는 때에 하루는 집에 와보니 모시고 있던 부모님이 화단이 겨울을 지나며 거의 모든 꽃들이 죽은것 같이 보이자 모든 풀과 꽃들을 다 뽑아 버리고 채소농사를 지으시려고 화단을 다 갈아엎으셨습니다. 그러나 채소농사가 그 땅이 좋지않아 잘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화단이 거의 초토화가 되어 버려진 땅처럼 갈아 엎어져 있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봄이 되고 여름이 되자 다시 그 옛날 수년전에 뿌려진 씨앗들에서 나온 땅속에 있는 뿌리에서 다시 싹이 나고 줄기가 나고 잎이 나고 꽃이 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정말 씨앗의 위대함을 다시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씨앗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다시 살아나는, 언젠가는 살아나는 위대한 생명력이 모든 씨앗에는 있습니다.

둘째는 사랑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남을 섬기고 베풀고 나누는 사랑의 씨앗을 뿌리면 반드시 되돌아 옵니다. 반드시 추수를 합니다. 누가복음 6:38에 말씀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 6:9). 아멘, 할렐루야! 우리 주변의 굶주린자, 병든자, 소외된자, 버려진자들을 찾아가 섬길때, 나눌때, 줄때 우리는 사랑의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반드시 추수할것입니다. 말만 하지않고 몸으로 사랑의 씨앗을 뿌립시다. 성프란시스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라, 그러나 필요할때만 말을 사용하라” (Preach the gospel, if necessary, use words) 복음을 전파할 때 주로 몸으로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 섬길때, 나누어줄때, 말할때보다 더 세상사람들은 우리의 착한 행실, 사랑의 행실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할것입니다. 마천중앙교회 한 성도는 밑에 종업원들을 많이 두고 있는데 그들에게 회사의 수입을 사랑으로 나누어주고 분배합니다. 종업원들이 최선을 다해 일하고 서로 서로 오고 싶어하는 회사입니다. 그래서 더욱 더 많은 성장을 하는 회사입니다. 밑의 종업원들을 착취하는 기독교인 사장은 오히려 복음을 가로막습니다.

셋째는 찬양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찬양을 많이 하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셨고 행하실것인지를 찬양하면 그 하나님이 여러분에 삶에 그대로 역사하십니다. 여러분의 입에 어떤 언어가 존재합니까? 긍정적 사고방식을 가르친 심리학자들은 우리 입에서 선포되는 말들의 중요성을 언급합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언어를 우리 입에 두면 우리의 삶도 부정적이 됩니다. 그러나 긍정적 언어를 우리 입에 두면 우리 삶이 긍정적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찬양은 가장 위대한 긍정적 언어입니다. 찬양하십시오. 곡조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을 높이십시오. 그 믿음의 고백인 찬양가사대로 여러분의 삶을, 포로기에 있는 삶을 돌리시고 바꾸실것입니다. 찬양은 명령입니다. 시편 135:6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시편 136:4입니다. 명령입니다. 찬양의 비밀을 경험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에 “이 눈에 아무 증거아니뵈어도, 이 귀에 아무 증거 아니 들려도” 믿음으로 찬양하십시오. 감사하십시오. 비록 많은 연약함이 있었어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인 다윗을 하나님이 높이 드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고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중의 하나가 된것처럼 하나님은 찬양하는 사람들을 높이십니다. 하나님은 찬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넷째는 노력의 씨앗을 뿌리십시오. 사업이든, 공부든, 사역이든. 무엇을 하든 노력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앙의 법칙일뿐만아니라 일반 자연세상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라디아 6:7) 남보다 더 일찍 일어나고 출근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세상사람만도 못한 성실성으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앞에 게을러서는 안됩니다. 언어를 공부하는것도 노력의 씨앗이 필요합니다. 저는 중고등학교시절 쉬는시간만 되면 미군방송인 AFKN을 틀고 못알아들어도 노력의 씨앗을 뿌린것이, 한영다락방을 날마다 읽고 묵상하고 암기하려고 했던것이, 아침마다 TV에서 하는 민병철 생활영어를 보고 적어서 학교를 오가는 길, 버스안에서 조각시간에 문장들을 암기하던것이, 언어정복과 언어극복의 추수를 하게했습니다. 이러한 씨뿌리는 세월이 흐른후 어느날 갑자기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것입니다. 많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원리는 노력의 씨앗을 날마다 날마다 비록 이 눈에 아무 진보 아니뵈어도, 이 귀에 아무 결과 아니들려도 믿음으로 날마다 날마다 노력의 씨앗을 뿌리면 곧 추수를 하게 됩니다. 농부들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기독교인도 자연안에 살기 때문에 이러한 자연의 법칙, 봄에 눈물의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거두워들이는 법칙에 순응해야합니다. 뿌린것없이, 최선의 노력없이, 거두려는것은 도둑심보입니다.

다섯째는 헌신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주님앞에 우리가 드린것, 그것이 물질이든, 시간이든, 재능이든, 기도이든, 찬양이든, 하나님께 드린 모든 헌신은 씨앗입니다. 헛되지 않습니다. 결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앞에 약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다 보십니다. 각자 자신의 수준에서 최선으로, 죽도록, 눈물로 헌신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누가복음 21:3-4에 예수님은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렙돈 연보를 드리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연보를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주님은 우리가 드리는 헌신의 양을 보시는 것이 아니고 질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적입니다. 사람마다 종류도 다르고 방법도 다르고 양도 다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헌신이 우리의 최선의 것인지를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앞에 나와 머리를 풀고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며 값비싼 향유옥합을 깨어 부은 여인에게 바리새인들과 제자들은 분노했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헌신의 씨앗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주님이 다 보고 계시고 주님이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이 다 기억하십니다.

오늘 본문 6절에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다같이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믿습니까? 여러분 정말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정녕” “기필코” “반드시”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올것입니다. 반드시 추수할것입니다. 그 씨앗들은 결코 헛되지 않을것입니다.

저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합니다. 개혁장로교회 목회자의 아들이었고 평신도로서 신학을 공부하고 광산노동자들에 말씀을 전하는 특수사역을 하고 화가가 되어 많은 위대한 그림을 남겼습니다. 빈센트는 자신의 개인적인 삶에 참 고난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말년을 정신병원 병실에 갇힌채 보내면서 우울증과 자살충동이라는 개인적인 비극의 포로기에서 심한 고난을 겪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린 그림들을 모은 화보집을 사보았더니 놀랍게도 “씨뿌리는자”라는 제목의 많은 그림들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배경에 다양한 색상에, 그러나 제목은 다 같았습니다. “씨뿌리는자”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씨뿌리는 자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농부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서안에는 많은 “씨앗”에 대한 말씀들이 등장합니다. “씨뿌리는 비유” “겨자씨 비유” 등 작은 씨앗속에 담긴 위대한 능력들이 자주 기독교의 진리와 신앙의 비밀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됩니다. 새롭게 기독교인이 되어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성도들을 포함하여 이미 오래 예수님을 믿은 우리 모두에 이르기까지 이 씨뿌리는 신앙의 진리는 동일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앞에 씨뿌리는 농부로 부름받았습니다. 기도의 씨앗, 사랑의 씨앗, 찬양의 씨앗, 노력의 씨앗, 헌신의 씨앗을 눈물로 뿌려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추수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농부로 살아 승리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이 시간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새롭게 그리스도인이 되고 마천중앙교회 성도가 되신 성도들과 이미 오래 주님의 백성이 되고 주님의 몸된 교회의 충성된 일군이 된 성도들 모두를 초대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앞에 나아갑시다. 주님, 주님의 착한 농부되길 원하니다. 저를 성실한 씨뿌리는 자로 만들어 주옵소서. 이 가장 귀한 기본적인 진리에 충실하는 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저의 삶을 바꾸어 주옵소서. 포로기에 있는 저의 삶에 축복과 은혜의 해방의 봄의 계절이 오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모두 함께 두손을 높이 들고 주님께 기도합시다. 주여, 주여, 주여, 날 도와주소서, 주님의 성실한 씨뿌리는 자가, 눈물로 씨뿌리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다같이 함께 주님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이 저녁 저희 가운데 임하심을 감사드리고 찬양드립니다. 저희의 삶을 포로에서 꿈꾸는것 같은 축복과 기쁨의 삶으로 바꾸어 주셨음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바꾸어 주실것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믿습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뵈어도,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들려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주님앞에 눈물로 씨앗을 뿌리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저희에게 대사를 행하신 하나님, 대사를 행하실 하나님, 꿈꾸는 것 같은 축복을 주실 하나님, 이미 우리의 삶에 대사를 목도한 자들도 다른 씨앗을 다시 눈물로 뿌리게 하여주옵소시고 아직 한번도 자신의 삶에 하나님의 대사를 경험하지 새로운 성도들을 축복하셔서 큰일 행하시는 하나님앞에 눈물의 씨앗을 뿌리게 하옵소서. 그래서 반드시, 정녕 기쁨으로 인생의 단을 거두게 하옵소서. 혹 이중, 이 땅에서는 고난을 받게 하시고 순교하게 하시고 이 땅에서는 추수를 보지 못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추수하도록 계획하신자들이 있다면 낙심치말고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도록 그 곳에서 영원한 천국에서 기쁨으로 추수하도록 하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를 하나님의 농부로, 하나님의 씨뿌리는 자로 부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09년 6월 21일
마천중앙교회
저녁헌신예배


     

  
26  박희춘 소장 독일어 설교 동영상 (Youtube)    박희춘 목사 2013/09/16 172 1092
25  박희춘소장 스페인어 설교와 성찬식인도 동영상 (멕시칼리 Mexicali)    박희춘 목사 2010/04/24 336 2573
24  스페인어 설교 (산크리스토발 San Cristobal)    박희춘 목사 2009/10/25 340 2731
23  "성령과 함께 고난을 이기라!" (구미시민교회설교)    박희춘 목사 2009/07/08 346 2747
22  "고난을 승리로!" (마천중앙교회 금요찬양예배설교 동영상)    박희춘 목사 2009/06/25 344 2296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하는 이유" (설교동영상과 설교문)    박희춘 목사 2009/06/23 344 2685
20  샌프란시스코 Night Ministry 동영상    박희춘 목사 2009/06/16 336 2133
19  "고난당하는자를 부르라!" (설교동영상과 설교문)    박희춘 목사 2009/05/25 357 2755
18  박희춘소장 영어설교 (San Jose Lutheran Church)    박희춘 목사 2008/03/01 411 4430
17  북미 설교학회 연례발표 설교학 논문들 1999년    박희춘 목사 2007/05/02 413 2846
16  북미 설교학회 연례발표 설교학 논문들 2000년    박희춘 목사 2007/05/02 398 3454
15  북미 설교학회 연례발표 설교학 논문들 2001년    박희춘 목사 2007/05/02 387 2308
14  북미 설교학회 연례발표 설교학 논문들 2002년    박희춘 목사 2007/05/02 391 2299
13  북미 설교학회 연례발표 설교학 논문들 2003년    박희춘 목사 2007/05/02 405 2381
12  북미 설교학회 연례발표 설교학 논문들 2004년    박희춘 목사 2007/05/02 410 2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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