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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더라인과 가정폭력 - 강덕지과장 (국랍과학수사연구소-범죄심리학)
박희춘 목사  (Homepage) 2018-12-01 20:48:59, 조회 : 1,397, 추천 : 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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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강덕지 과장의 범죄심리학 노트·마지막회 (신동아 2006년 6월호 인용)

사소한 듯 보이는 가정폭력이 훗날 가공할 폭력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면 몸서리가 쳐진다. 가정폭력의 주범은 99%가 아버지들이다. 철없는 아버지 탓에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나지 못한다. 따라서 범죄자의 아버지도 함께 처벌받아야 한다. 병든 아이들을 방치한 우리도 같이 벌 받아야 한다. 가정폭력에 희생된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순환고리와 그 위험성.
“아버지가  무서워요, 그래서  없앴어요”부모가 바르지 못하면 아이들도 바르지 못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큰다는 말도 있다. 부모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뒷모습(속마음)은 감출 수 없다. 정상적인 부모도 이럴진대 삐뚤어진 부모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까. 스펀지처럼 여과 없이 부모의 행태를 머리에 차곡차곡 담아두는 아이들.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오직 폭력을 통해서만 화를 해소한다. 그것밖에 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의 폭력 때문에 인생을 망친 범죄자가 너무도 많다. 그중 20대 A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어머니를 살해했다.

A를 만나보니 비만이었다. 뚱뚱하면서 살에 탄력이 없는, 마치 물에 가라앉은 시체의 몸이 불어난 것처럼 퉁퉁해 보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물어보니 어렸을 때부터 당뇨를 앓은 소아당뇨 환자였다. 그 때문에 남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청년으로 성장했다.

겉으로 보기엔 얌전하기만 한 그가 어떤 이유로 어머니를 살해했을까. 소아당뇨와 연관이 있어 보였다. 어릴 때 기억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형과 함께 집에서 쫓겨났어요. 밖에는 비가 내리고, 형과 나는 처마 밑에서 비를 맞으며 울고 있어요. 집에는 다시 들어갈 수 없어요. 아버지가 무섭거든요.”

피해자가 피해자를 죽이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어머니는 물론 두 아들을 수시로 때렸다.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그는 스스럼없이 “아버지”라고 대답했다. 범죄자라도 부모 욕을 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무의식적으로 부모의 허물을 감추는 것이 통상적이다. A는 달랐다. 그는 “아버지가 죽기만을 바랐다”고 했다.

“아버지와 마주치는 것이 가장 겁났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퇴근하기 전에 저녁을 잔뜩 먹고 잤습니다. 아니, 자는 척 했어요.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저녁 때면 으레 폭식하게 됐고, 먹자마자 잠이 들었어요. 중학교 때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쓰러졌어요.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소아당뇨래요.”

형편이 어려웠던 A는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병치레를 한 탓에 친구도 거의 사귀지 못했다. 학업을 마치지 못해 취직도 못했다. 입사시험에선 당뇨 때문에 번번이 떨어졌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어머니와 함께 생활한 그는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알아봐야 했다.

그러나 일자리를 얻지 못하자 공원에서 빈둥거리다가 허기가 지면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 어머니에겐 일하고 왔다고 둘러댔다. 당뇨병은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야 다른 합병증으로 번지지 않는데, 수돗물로 배를 채웠으니 병은 더 악화됐다.

취직했다는 아들이 석 달이 넘어도 월급을 가져오지 않자 어머니는 어떻게 된 것인지 물었다. 그는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언제까지나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날 따라 몸이 아파 방에 누워 있는 A를 보고 어머니는 꾸중을 했다. A는 참을 수 없었다. 일순간 분노가 일었고, 그게 어머니를 본 마지막이었다.

기가 막히지만 피해자가 피해자를 살해한 사건이었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머니와 아들이 피해를 당했지만 피해자는 폭력을 가한 아버지가 아니었다. 폭력에 대한 피해는 이렇듯 불쌍하게도 다시 피해자에게 돌아간다.

살다 보면 화가 치솟는 일이 많다. 문제는 이런 분노를 어떻게 해소하느냐는 것이다. 분노를 처리하는 방법, 그건 어릴 때 부모로부터 배울 수밖에 없다. 부모가 아이들 앞에서 분노를 절제하고 참아내는 것을 보여주면 아이들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폭력을 휘두르면 폭력을 배운다.

이런 아이들은 커서 신경증 환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가 되면 손이나 다리를 떨기도 한다.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이런 상태가 누적되면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닥쳐오면 가공할 폭력으로 터져나온다.

신경증 환자의 잠재된 폭력성

술과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B. 술에 취하면 어머니와 자신을 상습적으로 때리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그후 B의 아버지는 술에 절어 일찍 세상을 떴고, 어머니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폭력의 근원이 사라진 가정, 생각해보면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초등학생이던 B는 어머니가 돌아왔는데도 가출하고 만다. 문제는 화가 나면 참지 못하는 그의 성격이었다. 자신의 뜻대로 하지 못하면 분노를 자제하지 못했다. 아버지를 무의식적으로 학습한 결과였다.

초등학교 때 가출했으니 그후의 삶이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는 따위의 말은 그에겐 사치였고, 쓸데없는 소리였다. 자연히 남을 욕하게 되고 직장을 탓했다. 20대부터 절도범으로 경찰서를 들락거리던 B는 40대까지 범죄행각을 멈추지 못했다. 주로 여주인이 운영하는 간이주점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아 금품을 갈취했다. 사고가 터진 날엔 일이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여주인이 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반항하자 주방에서 쓰던 칼로 그녀를 찔렀다. 첫 살인이었다.

“죽이려는 뜻은 없었어요. 그런데 여자가 소리를 치자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어요. 저항하니까 죽인 게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자 화가 났고, 참을 수 없었어요.”

담담하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B에게서 나는 아버지의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고서는 몸서리가 쳐졌다. 분노를 절제하는 방법을 부모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도 새삼 깨달았다. 나는 자식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줬을까.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서 만난 20대 후반의 피의자 C는 ‘물품음란증’ 환자였다. 여자가 사용하는 물건을 손에 넣어야 화가 풀렸다. 이것이 점차 심해져 나중엔 여성의 체취가 묻은 속옷을 탐했고, 결국 잠든 여성의 속옷을 훔치려다 살인까지 저질렀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는 어디서부터 삐뚤어졌을까.

그의 아버지도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다. 참다 못한 어머니는 이혼을 요구했고, 결국 가정은 해체됐다. 아버지가 변변치 못하면 아이들은 주눅 들게 마련이다. 아버지는 자랑스러워야 한다. 가난한 아버지라도 아이들 마음에는 바로 서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가정에 대한 열등감은 아이를 정상적으로 성장시키지 못하는 법이다.

‘물품음란증’ ‘충동장애자’

C의 물품음란증은 사춘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춘기 때 여자친구 사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니, 배울 수 없었다. 기가 죽어 성장한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다. 이런 아이는 이성에게 접근해 이성에 대한 갈증을 풀기보다 환상 속에서 갈증을 해소한다. C는 그런 관심을 여성의 물품을 모으는 것으로 풀었다. 그는 여성의 속옷, 스타킹을 닥치는 대로 모았다.

이런 습관은 자연히 여성의 물품을 훔치는 것으로 진전됐다. 잠든 여성의 집에 침입, 속옷을 벗긴 뒤 가지고 나오기도 했고, 때론 칼로 옷을 찢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환상 속에서 성적 욕구를 푼 데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이것이 강간으로 이어졌고, 어느 날 놀라 소리 지르는 여성을 살해하고 말았다.

환상의 세계엔 옳고 그름이 없다. 환상에 몰입할수록 방법은 점점 엽기적으로 진화한다. 아버지의 타락, 폭력에 노출된 어린 시절, 억압, 그리고 환상의 세계로 몰입. 이런 과정이 C의 인생에 고스란히 스며들었고, 결국 살인자가 되고 말았다.

여성을 살해한 후 시체를 강간한 D는 ‘충동장애자’였다. D는 아버지의 폭력으로 심리적 빈곤감을 느끼며 자랐고,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절도와 강간을 일삼다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D는 중학교 때 가출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친구들을 때려 문제아로 찍혔기에 더는 학교생활을 견뎌내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돈이 더 필요하면 남의 집을 털었다.

그의 절도행각은 남다른 데가 있어 보였다. 딱히 그 물건이 필요해서 훔친 것 같지 않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 웅크린 또 다른 D의 모습이 보였다. 영원히 채울 수 없는 상실감이라고 할까. 심리적 빈곤감이 그를 여러 해 동안 지배한 것 같았다. 이런 사람들은 술만 마시면 물건을 훔친다. 자신의 도벽을 억제하는 빗장이 걸려 있다가 술을 마시면 풀리고, 물건을 훔치는 것이다. 대도(大盜) 조세형처럼 말이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충동장애자라고 한다. 이들은 성적 충동이 생기면 어떻게든 풀려고 든다. 반사회적인 방법일지라도 가리지 않는다. 이런 성격 탓에 D는 혼자 사는 여성을 강간하고 살인한 뒤 그 시체를 다시 강간하는 엽기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릴 적에 남의 집, 남의 아버지 얘기 듣는 게 싫었어요. 나는 그들에게 자랑할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버지 자랑하는 아이들을 두들겨팼죠. 걔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내 아버지가 미웠기 때문이었어요.”

남자친구 어머니를 죽이다

남자친구의 어머니를 망치로 살인한 20대 여성 E는 대학을 갓 졸업한, 꿈 많은 아가씨였다. 그 사건만 없었다면 번듯한 직장에서 마음껏 그 꿈을 펼쳐 보였을 것이다. 안타까웠다. “딸기우유를 먹고 싶다”던 그녀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E의 아버지는 상습적으로 외도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다. 거기까지만 들어도 E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황폐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은 물론, 자신도 사랑할 수 있는 법이다. E는 집착을 사랑으로 착각한 여인이었다.

E는 대학 시절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처음 맛보는 사랑이었다. 빠른 속도로 그에게 빠져들었다. 문제는 남자친구의 어머니였다. 어찌된 일인지, 그의 어머니는 결혼은커녕 교제까지 반대했다. E는 그에 굴하지 않고 그 남자를 사랑했다.

집으로 찾아가면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문전박대에다 참기 어려운 욕까지 퍼부어댔다. 이런 일이 수차 반복됐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자신의 손에는 망치가 들려 있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E는 수감된 뒤에도 범행을 부인했다. 이는 심리적으로 자신을 억압하는 행동이다. 그는 수갑을 찬 상황에서도 남자친구와 헤어지면 안 된다는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남자친구에게서 기대했으나, 그것은 집착이지 사랑이 아니었다. 정상적으로 자랐다면 다른 남자를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남자친구는 친구 이상이었다. 아버지의 폭력이 사랑의 결핍으로 변질된 것이다. 순순히 자신의 죄를 털어놓은 E는 나를 아버지로 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연이 안타까워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너무 부담스러웠다. 경찰서에서 헤어진 뒤 우리는 다시 만날 일이 없었다.

교수 아버지의 언어폭력

30대 주부 F는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가출했다. 어린 소녀가 집을 나가본들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어렸을 때부터 몸을 팔아 그 대가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식당에 취직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힘든 일을 견뎌내지 못한 탓이다. 다시 거리의 여자로 살다가 우연히 한 남자를 알게 됐다. 남자가 같이 살자고 해서 결혼으로 이어졌다. 그때부터는 힘들다는 식당일도 주저하지 않고 하면서 돈을 벌었다. ‘남자와 사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이 실직하고 집에서 놀게 되자 상황은 급반전했다. 열심히 일을 해도 보람이 없었다. 남편은 자신의 처지를 미안해하기는커녕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렸다. 자신의 힘으로 일궈놓은 집에서도 쫓겨난 F는 다시 거리의 여인으로 돌아갔다. 며칠을 그렇게 보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남편은 만취된 채 F를 때렸다.

자신을 때린 뒤 술에 취해 잠든 남편을 보자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남편의 얼굴에 아버지의 얼굴이 오버랩되자 그녀는 남편을 살해해 토막냈다. 아버지의 부존재(不存在)가 삶의 부조리(不條理)로 귀결된 사건이었다.

폭력 아버지는 대부분 가난한 가정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얼마 전에 접한 아버지 살인사건을 보고 그렇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대학교수의 아들 G군은 “집에 가기 싫었다”고 말했다.

G의 꿈은 커피 전문점 주인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바람은 그런 게 아니었다. 아들이 자신의 기대와 다르게 엇나가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비 이름에 먹칠을 하고 다닌다”며 다그쳤다. 물리적인 폭력만큼이나 무서운 것인 정신적인 폭력이다. 모욕적인 언어는 날카로운 비수처럼 아들의 가슴에 박혔다. 이랬으니 집에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아버지는 자식이 자신보다 더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런저런 조언도 해주고, 때론 분발하라고 닦달하기도 한다. 그런 ‘도움’이 자식의 미래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까. 자식이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면 그때부터 자식은 엇나가기 시작한다. 겉으로 듣는 척해도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한다. G는 자신의 꿈과 너무 먼 것을 강요하는 아버지가 싫었고, 결국 아버지를 없애면서 목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죽이는 순간 그의 꿈도 함께 사라졌다.

못된 것만 닮는 사회

수많은 범죄자를 만나면서 나는 종종 하버드대 로버트 푸트넘 교수를 떠올렸다. 그는 공동체가 살아 있는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의 범죄율을 비교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지역 유대관계가 강화된 미국 중부지역과 그렇지 못한 남부지역을 비교한 결과, 남부지역의 범죄율이 높았다. 자신에게 부과된 문제를 주위 사람과 함께 풀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하다. 그러나 자신의 문제를 혼자 풀어가야 하는 사회의 구성원은 반(反)사회적인 성격을 갖기 쉽다.

요즘은 정신을 못 차릴 만큼 갖가지 범죄가 창궐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점점 미국 남부사회를 닮아가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다. 엽기적 범죄영화 ‘양들의 침묵’은 더 이상 미국 영화 속 현실이 아닐지 모른다. 공동체 의식이 희박해진 상황에서 정신이 병든 자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이들은 비수를 들고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미국의 못된 면을 닮아가는 데도 시스템은 미국을 따라가지 못한다. 적어도 미국사회는 범죄자를 범죄의 경중(輕重)을 따져 분리 수용하면서 적절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교화한다. 예컨대 교도소 내 ‘용서의 프로그램’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죄를 저지른 피의자를 위한 것이다. 어릴 때 부모에게 학대를 받은 피의자는 당시 상황을 재연해 스스로 당시의 부모를 용서한다. 그 결과 마음속 갈등은 해소되고, 반사회적 성향은 옅어진다. 이런 점에서 최근 법무부가 심리치료사를 교도소에 배치해 피의자를 상담하려 한다는 소식은 반갑다.

나는 범죄자를 만날 때마다 이들의 손을 유심히 살펴본다. 우리들 손과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손가락 마디가 온전히 자라지 못해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신체적으로 건강하다고 성인이 아니다. 성장 단계에 맞는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에 따라 마디가 정상적으로 자라야 한다. 그래야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인다.

마디가 분절된 사람들, 그래서 기형적으로 자란 사람들의 손을 만져보면서 우리 사회의 기형을 절감한다.

신동아 2006년 6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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