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소스톰 설교학 연구소
title
  

|연구소 소개|
|공지사항|
|설교학연구실|
|수사학연구실|
|설교컨퍼런스|
|설교코칭스쿨|
|설교 동영상|
|추천 사이트|
|포토 갤러리|
|방명록|
|관리자|


"걸어다니는 살인무기" - 강덕지과장
박희춘 목사  (Homepage) 2018-12-01 19:49:33, 조회 : 1,373, 추천 : 561
- Download #1 : borderline1.jpg (23.2 KB), Download : 91

- Download #2 : borderline2.jpg (29.1 KB), Download : 91


"걸어다니는 살인무기" - 경계성 인격장애(보더라인)

신동아 2006년 2월 호에 실린 국립과학수사본부의 강덕지 과장의 범죄심리학 노트를 소개합니다.

이 내용중에는 독일 법무정신병원의 환자들의 사례와 아주 유사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물론 보더라인 환자들이 모두 살인무기라는 것은 과장된 점이지만 그렇게 보더라인환자들중에
법무정신병원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가장 다루기 어려운, 의사와 간호사들 심리치료사들을 괴롭히는
환자들 그룹입니다. 제가 사역하는 독일 법무정신병원에도 강덕지 과장의 기록처럼 방화범들 자해와 타해를
일삼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사랑이다. 그들도 우리 이웃이다.----

강덕지 과장의 이 기사는 거의 한편의 절실한 설교입니다.!!!!

------------------------------------------------------------------

사람들 속의 섬, 경계성 인격장애(borderline) 외면하면 ‘걸어다니는 살인무기’

강덕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범죄심리과장

한국의 범죄자들은 누구인가. 왜 범죄를 저지르는가. 그들은 악인(惡人)인가. 우리 사회는 범죄자를 정면에서 바라본 적이 없다. 어둠의 세계에 그들을 방치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가둘 수 있어도 죄는 가둘 수 없다. 죄의 ‘싹’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어디선가 또 다른 범죄가 일어난다. 국과수 강덕지 과장은 지금까지 수많은 범죄 피의자를 만나 심층 면접했다. 그 ‘어둠의 자식들’이 털어놓은 진실과 우리 모두의 자화상.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세요.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오릅니까.

“캄캄한 밤에 대문 앞 쓰레기통 옆에서 누나 손을 잡고 엄마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어디에 가셨나요.

“교회에 가셨어요.”

-기다리다가 안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냥 굶고 잡니다.”

몇 해 전 서울에서 세 여성을 강간한 뒤 목졸라 살해한 H씨. 교도소 면회실에 마주 앉은 그는 훤칠한 키에 호남형인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여자들한테 인기를 끌었음직했다. 직업은 레스토랑 웨이터. 청소부였던 아버지는 성실하게 일한 덕분에 2층집을 지었으며 남매를 키웠다. 이런 것만 보자면 그는 평범하게 자랐을 법했다.

문제는 어머니였다. 교회 활동에 몰두한 나머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남매는 어머니를 기다리다 지치면 밥도 굶고 잠들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H의 마음속에 공허감이 쌓여갔다. 우울증은 약물로 어느 정도 치료가 된다지만 공허감은 약물로도 치유할 수 없다. 신체는 건강했지만 마음은 유약했던 H는 어린 시절 반복된 공허감으로 마음의 상처가 컸다. 어머니가 없는 자리에 대신 들어간 것은 여자에 대한 증오심이었고 그 뿌리는 깊어 보였다.

여자에 대한 분노

그는 중학교 때부터 이상한 행동을 자주 했다고 한다. 여자친구는 잘 사귀었지만 매번 끝이 좋지 않았다. 늘 그들의 소지품을 빼앗거나 훔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은 물건들이 그가 살던 옥탑방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나중엔 이상하게 여긴 부모가 정신과 치료를 권했고, 스스로도 답답했던지 순순히 부모의 뜻을 따랐다. 진단 결과 병명은 경계성 인격장애(Borderline Disorder). 이 같은 성격장애의 특징은 대인관계가 불안정하고 분노감을 자주 표출하고 행동이나 기분이 수시로 바뀌는 것이다.

여성을 괴롭히는 데서 묘한 희열감을 맛본 그는 한 발짝 더 나아갔다. 그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집에 침입해 그곳에 살던 여자를 강간한 뒤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 뒤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나선 그는 두 명의 여성을 똑같은 방식으로 죽였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까지 질렀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아주 어릴 때 어머니가 죽으면 아이들은 아예 단념하고 산다. 하지만 함께 살던 어머니가 사라진 경우엔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청주에서 발생한 엽기적인 살인사건(여자의 가슴을 도려냈다)의 장본인 역시 그랬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계모와 살게 됐으나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혹독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의 마음에 여자에 대한 분노가 쌓였고 결국 여성을 상대로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거리 활보하는 ‘예비 살인자’들

과거의 우리 사회를 떠올려보자. 담은 있어도 그리 높지 않았다. 까치발로 서면 앞집 마당이 보였다. 바람막이도 되고 낯선 사람도 막는 정도의 높이다. 담이 있어도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과 방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 가족끼리 서로 마주치는 일이 잦다. 아버지가 아들의 얼굴을 자주 보면 할 말도 많아진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배운다.


이런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면 어른이 돼서도 큰 잘못을 저지르진 않는다. 술에 만취해도 집에 들어가려면 부모의 얼굴을 봐야 한다. 그러니 어떻게 술 마신 티를 내겠는가.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게 된다. 이처럼 외적으로 막혀 있는 듯 해도 내적으로는 열려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이런 정경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구 사회를 좇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 방엔 TV, 전화기, 컴퓨터 등 없는 것이 없다. TV를 보려고 굳이 거실로 나오지 않아도 된다. 휴대전화로 통화하기 때문에 자녀가 친구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부모는 알 길이 없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친구 집에 전화를 걸려면 아버지나 어머니를 거쳐야 했다. 이런 것도 모두 사회성을 길러주는 요인이다.

H씨 때문에 애꿎은 세 명의 여성이 희생됐다. H의 죄만 물으면 끝나는 것일까. 엄밀히 말하자면 H는 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시켜 범죄자가 됐을 뿐이다. 규범적으로, 도의적으로 보면 H의 어머니도 범죄자다. 가정을 소홀히 해 아들이 정상적으로 자라나지 못했고, 그 결과 세 명의 목숨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H를 사회와 격리한다고 상황이 종료되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경계성 인격장애는 정신병은 아니다. 일종의 성격장애인데, 어느 대학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대학생 중 상당수에게서 이런 성격장애 징후가 보이며,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 없이 불을 지르는 방화범의 상당수도 경계성 인격장애자다. 무서운 것은 이들이 ‘정신병자’가 아니기 때문에 병원에 수용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사고’를 칠 때까지는 누구도 이들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다. 또 다른 H가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얘기다.

예전엔 부모가 이혼하면 서로 아이들을 데려가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떠맡긴다. 아이들을 맡아도 위탁시설에 보내거나 거의 방치하기 때문에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 아이들은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심한 경우 우울증에 빠져 자살하거나, 가슴속의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물론 H의 죄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모든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어머니는 위급할 때 언제라도 볼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범죄자와 일반인의 차이는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다. 범죄자가 되기까지 수많은 요인이 축적되지만, 그 경계선을 넘는 것은 누구라도 가능하다. 전북 익산에서 네 명을 살해한 B의 사례가 그랬다.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그를 처음 만나던 날, 얼굴을 힐끔 쳐다보니 잔뜩 찌푸린 인상이 한눈에도 불만으로 가득 차 보였다. 나를 쳐다본 B는 이렇게 입을 뗐다.

“뭐야?”

-(공손하게) 범죄분석을 하는 국과수 직원입니다.

“딱 5분만 줄 테니, 5분 안에 끝내고 돌아가. 나 오늘 굉장히 피곤하다.”

-나도 5분만 있다가 갈 테니 당신도 가시오.

순간 B는 기분 나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피하지 않고 그의 눈을 응시했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떨구며 “밥 한 그릇이면 되는데…”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됐습니다. 할 얘기는 다 끝난 것 같습니다. 그냥 돌아가세요.”

그러자 그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당신의 그 말, ‘밥 한 그릇이면 됐을 것’이란 한마디로 당신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스님의 선문답처럼 부자나 가난한 자나 똑같이 밥 한 그릇을 먹고 산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쓸데없는 욕심 때문에 죄를 저질렀다고 내게 고백한 셈이었다. 나는 그 뜻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무기력의 누적, 그리고 자포자기

B가 흉악한 살인을 저지른 원인(遠因)은 중학교 때 당한 교통사고였다. 사고로 왼팔을 전혀 못 쓰게 되자 그는 희망을 잃어버렸다. 이 때문에 열등감을 갖게 됐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됐다. 무기력이 누적되면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데, 그가 그랬다. 술 마시고, 툭하면 주변 사람들과 싸우면서 그는 서서히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들었다. 가족마저 그를 사람 취급하지 않자 성격은 더욱 삐뚤어졌고, 급기야 친구와 함께 강도로 돌변했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 내 주소를 알려줬다. 그때부터 그는 나를 꼬박꼬박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편지를 보내왔다. 그가 보내온 두 번째 편지에 답장을 하면서 “밥 한 그릇이면 되는데”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물어보았다. 대충 짐작은 했지만, 그로부터 직접 듣고 싶었다. 그가 털어놓은 얘기는 이랬다.

네 명을 죽이고 다섯 번째 희생자를 찾기 위해 어느 시골을 찾아간 그는 노부부가 사는 한 집을 찾았다. 할머니는 마침 집에 없었다. 할아버지에게 담배 한 개비를 청하면서 그는 ‘어떻게 하면 이 노인을 죽이고 물건을 훔쳐 나갈까’를 궁리했다.

그런데 노인이 뜬금없이 “밥 한 그릇이면 되는데…” 하며 혀를 차는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말이 귀에 푹 꽂혔다. 순간, ‘그렇지. 밥 한 그릇이면 되는데, 내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밥 한 그릇은 먹을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B는 노인에게 물었다.

“영감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노인은 “세상 돌아가는 꼴을 봐. 뭣 때문에 다투는지 이해가 안 돼서 그래”라며 툭 내뱉었다. B는 그 한마디에 마음을 돌렸고,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목숨을 건졌다. 이 말을 가슴에 묻은 B는 더는 살인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와 만난 날 이 말을 중얼거렸던 것이다.

요즘 B가 보내온 편지를 읽어보면 제법 여유가 느껴진다. 사실 그와 가볍게 주고받은 편지만으로도 그는 상당히 교화되고 있었다. 교화가 거창한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귀를 열고 들어주면 대부분의 범죄자는 마음을 열고 과거를 뉘우친다.

이렇듯 순진한 사람이 무서운 살인자로 넘어가는 ‘경계(境界)’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알고 보면 그것은 너무나 간단하다. 범죄자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면 ‘계획적인 살인’을 저지른 경우는 흔치 않다. 치정(癡情)에 얽혀 있거나 돈 관계가 복잡했거나 원한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사람은 계획적으로 살인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우발적인 사건이다.

B도 마찬가지다. 칼을 들이대고 돈을 빼앗을 때 사람을 죽일 의도는 없었다. 그러나 상대가 저항하자 그는 위협을 느꼈다. 칼은 자신에게 있었지만, 한 팔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겁을 먹었고, 이 때문에 칼을 휘두른 것이다.

살인자를 만나 보면 대부분 체구가 왜소하고 얼굴은 유약하게 생겼다. 아무리 칼을 들었다 해도 상대의 체구가 왜소하면 당하는 사람은 반항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실수다. 궁지에 몰린 사람일수록 더욱 난폭해지는 법이다. 상대가 반항하면 여지없이 칼을 휘두른다. 강도와 살인은 엄청난 차이다.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수사본부가 설치되고 수사요원이 집중 배치된다.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어떤 강도라도 이런 상황에 직면하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백이면 백 모두 후회한다.

3년 전 부산에서 8명을 죽이고, 9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J씨도 체구가 자그마했다. 그도 부모를 잘 만났더라면 그렇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J를 고아원에 맡겨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덩치가 작았던 그는 고아원 친구들에게 매를 맞고 따돌림을 당했다. 이를 견디지 못해 고아원을 도망치듯 나왔고, 생존을 위해 도둑질을 배웠다.

늘 약자의 처지에서 산 탓에 그는 방어용 칼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이것도 불안해 그는 칼을 넣어둔 호주머니에 오른손을 넣고 다녔다. 위급할 때 빨리 칼을 꺼내들 생각에서였다. 이런 모습을 수상하게 여긴 한 방범대원이 그를 막아섰고, 호주머니를 만져보니 칼 같은 것이 손에 잡혔다. 불안한 J는 칼을 꺼내들었고 방범대원을 찔렀다. 이렇게 해서 살인이 시작됐고, 연이어 희생자가 발생했다.

부산에서 만난 J는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 사람의 인상은 평소에 쌓인 감정이 축적된 결과다. 찌들어서 산 사람은 그 모습대로 인상이 맺힌다. 인상이 좋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멀리하게 된다. 그러면서 점차 사회 바깥으로 격리된다. 격리되면서 대화의 상대가 사라지고, 가슴에 쌓아둔 응어리를 풀지 못하면서 삐뚤어진다. 이들과 비교하면 지금 대화할 상대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인생이다.

불 지르고 주인 부르는 방화범

얼마 전 서울 서대문에서 검거된 방화범을 만나면서 나는 사람에게 대화의 상대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람끼리 서로 격려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됐다. 서대문 방화범 K의 나이는 35세, 직업은 없었다. 어릴 때 부모가 죽고 외가에서 자란 K는 10대 때 가출해 여기저기 떠돌며 살았다. 이렇다 할 직업이 없어 주위에 친구가 없었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을 마시고 남의 집에 불을 질렀다. 처음엔 장난삼아 불을 놓았는데, 생각보다 불길이 커져 덜컥 겁이 났다. 순간, 불을 꺼야 한다는 생각에 집 주인을 불렀고 다행히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전후사정을 모르는 주인은 그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감사의 말에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흥분할 정도였다. 늘 천덕꾸러기로 자란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는 그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때부터 그는 습관적으로 여기저기 불을 놓은 뒤 주인을 불렀다. 그러곤 예외없이 고맙다는 인사말을 듣고 만족스러워했다.

범죄자의 삶의 궤적을 추적해보면 K처럼 ‘고맙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었던 K에게 방화는 대화 상대를 만들어준 것은 물론 칭찬까지 듣게 해준 강화물이었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모든 종류의 언론매체를 읽고 본다. 그러나 어느 매체에서도 범죄자의 심리나 범죄의 원인을 깊이 파고드는 기사를 보지 못했다. 어떤 죄를 저질러 범죄자가 됐다는 설명은 있어도 무슨 이유로 범죄를 저질렀는지 치밀하게 분석한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범죄자를 취조하는 형사들은 범죄 사실을 밝혀내는 데 주력하기 때문에 범인의 심리상태나 어린 시절의 아픔 같은 것은 관심 밖이다. 범죄자도 어떻게든 범죄 사실을 숨겨야 하기 때문에 굳이 속을 털어놓지 않는다. 기자들은 범죄자에게 접근하는 통로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형사들의 수사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범죄가 일어나고 있지만,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고, 그런 시스템도 없다.

범죄 피의자를 만나보면서 우리 사회가 범죄자를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 우린 범죄자에 대해 무조건적인 편견을 갖고 있다. 때론 범죄의 진실이 왜곡되기도 하고, 지엽적인 이유가 마치 본질인 양 부각되기도 했다. 우린 이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이들이 털어놓는 진실을 함께 나눠야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 알고 싶지 않다고 없어지는 세계가 아니다. 범죄는 TV 뉴스에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가족이, 친족이, 친구가 언젠가 당할 수 있는 것이다.

몇 해 전 인천에서 벌어진 강도 살인사건의 주범 L. 살인을 저지르기 전 그는 금속 가공 공장에서 착실하게 일하던 청년이었다. 소년기에 한두 번 교도소를 들락거렸지만 성인이 되면서 모범수로 거듭났고, 출소한 뒤엔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려고 열심히 일했다. 워낙 열심히 일한 덕분에 그는 회사 사장의 배려로 회사 기숙사에서 거주하면서 일하는 특혜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겐 한 가지 숨기고 싶은 게 있었다. 어깨에 새긴 문신이었다. 혹시 공장 동료들이 이것을 보고 그의 과거를 알게 되지 않을까 염려해 그는 더운 여름에도 긴팔옷을 입고 다녔다.

무더위가 절정에 달했던 어느 여름, 그는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옷을 벗고 러닝셔츠 차림으로 세수를 했다. 그런데 공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우연히 그의 어깨에 새겨진 문신을 발견하고 사장에게 귀띔했다. 사장은 그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고 그는 순순히 과거를 털어놓았다. 결국 그는 회사를 나가야 했다.

이런 경우 보통 사람은 과거를 숨기고 다른 공장에 취직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의 처지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어렵게 일을 시작해 인생에서 처음으로 재미를 느끼고 노력을 인정받던 그에게 닥쳐온 좌절감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다. 이런 경우 다시 일어서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L은 회사에서 쫓겨난 뒤 여인숙을 전전하면서 생활하다 돈이 떨어지자 다시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고 결국 살인까지 하게 됐다.

그들도 이웃이다

이 세상엔 악인도 없고 선인도 없다고 생각한다. 상황과 판단기준에 따라 선인도 되고 악인도 된다. 죄를 지은 사람을 악인으로 내몰고 사회에서 격리하면 이들은 영원히 악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을 만나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면 그들은 눈물을 흘린다. 그들이 처음 보는 내게 정을 느끼는 이유가 뭐겠는가.

만성질환은 고치기 어렵듯 이들의 병은 어려서부터 형성된 것이어서 치료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기나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들의 시선을 똑바로 보고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을 해줘야 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사랑이다. 그들도 우리 이웃이다.

신동아 2006년 2월 호



  추천하기   목록보기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zero
Copyright : ck | Email : whru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