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소스톰 설교학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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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본문선택에서의 자유성과 창조성 -박희춘목사
박희춘 목사  (Homepage) 2019-11-11 06:28:53, 조회 : 42, 추천 : 16

설교사역은 창조성의 사역입니다.

마치 소설가가 소설을 쓰듯이 수필가가 수필을 쓰듯이
설교자들은 매주 새로운, 전혀 전에 들어본적이 없는
설교를 창작해야하는 부담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창조작업에 부담을 느끼는 설교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설교를
빌려쓰다가 설교도용의 윤리적 비난에 처하기도 합니다.

매주에 여러번 설교를 해야하는 개신교 설교자들에게
설교창작의 부담은 엄청납니다.

카톨릭교회의 성직자들은 그래서 아마도 예배 예전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설교는 아주 작은 부분으로 그리고 그 설교도 거의 모든 교회가 동일하게 전해지는
자료에 의해 합니다. 그러면 창작의 부담은 감소합니다.

한국 기독교 개신교의 설교자들은 훌륭한 열정적인 설교로 교회를 부흥시켰습니다.

전통적인 설교자들은 자신들의 설교 본문을 자유롭게 선택했습니다.

설교자들은 홀로 기도실에서 기도원에서 서재에서 자신의 성서읽기를 통해 자신의 영성과
설교사역에 영감을 얻고 메모하고 거기에서 설교의 본문과 설교의 영감을 얻었습니다.

혹 독서하던중, 혹 일상의 삶속에서 어떤 영감있는 비유를 발견할때 거기에서
성서본문을 찾고 설교본문을 발견하고 설교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에 예전적 설교붐이 불면서 개신교 설교자들은 교회력이라는 새로운
예전적 기독교 예배와 설교사역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에서 설교본문을 택하면서
기독교 설교자들은 매주 매주 성서일과에 따른 본문에서 자신들의 설교 본문을 정하도록
요구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설교자들은 설교준비에 있어서 한주간의 시간만을 부여받게 되었고 스스로 설교본문을
찾고 결정하기보다 수동적으로 피동적으로 주어지는 성서일과의 본문을 설교하도록 통제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딘가모르게 기독교 설교자들의 설교가 영감을 잃고 시간에 쫓겨 급하게 하는 오래된 포도주처럼
시간속에 묶어 수정과 교정을 거치면서 성숙되고 자라난 설교가 되지 못하고 급하게 출산된 조산된 아기와 같은
설교의 모습을 갖게 됩니다.

우리 선배들이 하던대로 자유롭게 설교본문을 선택해서 하는 설교는 주제설교라는 명칭으로 성서 전체를
설교하지 않는 치우친, 설교자의 기호에 따라 제한적인 성서적 설교라는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문제는 설교자들이 골고루 성서를  전체적으로 설교해야한다는 목적하에
안타깝게도 설교자들의 영성과 영감있는 창조성 풍부한 설교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성은 자유성에서 옵니다.

통제는 창조를 방해합니다.

설교자들이 홀로 성서를 읽으면서, 기도 골방에서 기도중에,
일상의 삶을 깊이 참여하고 읽어내면서, 독서하면서...

수시로 메모하면서..

스스로가 발견한 주제와 스스로가 선택한 설교본문으로
설교를 작성하고 설교원고를 쓰고
그 원고를 거듭하여 읽으면서 수정하고 교정하고
미리 미리 이런 여러편의 설교를 준비하고 있다가
설교할때 설교자는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자신의 창조적 풍성한 설교를 하게 됩니다.

매주 매주 교회력의 성서일과가 주는 설교본문의 통제를 받고
영감이 부족하고 열정이 사그러진 설교준비과 설교를 하는 것보다
더 낫지 않겠습니까?

free writing
brain storming도 이렇게 설교를 준비할때 설교자들이 사용할수 있는 방법입니다.

설교는 계시입니다.
설교자를 통해 주님이 청중에게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는 살아있는 계시의 말씀의 거룩한 사역입니다.
매주 매주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도전과 고난에 처하는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위로와 인도하심의 중요한 말씀의 사역입니다.

저는 교회력와 성서일과 사용을 반대하는것은 아닙니다.

예배속에서 교회력의 성서일과 구약, 시편, 복음서, 서신서 본문들을
성서 낭독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듣게 하고
설교는 설교자의 창조적 작업으로 하게 할수 없겠냐 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들은 자신의 스스로 선택한 설교본문을 서론으로 도입으로
읽고 설교를 시작할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러면 예전적인 설교사역과 창조적이고 계시적인 자유로운 설교사역이 동시에
예배속에 조화를 이룰수 있을것입니다.

성서일과를 설교본문으로 하면 설교자들은 게으러집니다. 설교본문선택에서 말입니다.
수동과 피동속에 능동성을 잃습니다.
그러나 설교자들이 스스로 설교본문을 선택해야한다면 설교자들은 늘 깨어있어야 하고
개인기도, 묵상, 독서, 삶의 관찰속에서 오는
찰나적 영감을 메모하면서
거꾸로 설교본문을 결정하고
거기에서 설교의 영감과 계시속에 설교의 시작을 합니다.
그러나 아주 영감있고 어딘지 모르게 독창적이고 설교자자신만이 할수 있는
살아있는 유기적인 설교를 하게 됩니다.

한 명설교는 때론 하나의 작은 묵상, 명상, 삶속의 비유와 은유
통찰에서..마치 강물이 시냇물이 모여서 그리고 원천수의 한방울의 물에서 이루어지듯이
근원적인 시초의 발원이 됩니다.

작은 불꽃이라고 할까요.

그 작은 불꽃이 있는 설교는 그 불꽃으로 인해 점점 활활 타오르게 됩니다.

오랜 설교를 해온 설교자들은 설교자들의 성서본문의 복합적이고 통합적인 사용을 이해합니다.

우리가 어떤 설교본문을 택하던 설교자들은 항상 성서전체에서 설교할수 있습니다.

주제설교가 문제가 아니고 설교자가 근본적으로 성서적 설교를 하는가 아닌가에 문제가 있는것입니다.
주제설교를 해도 설교자들은 성서적 주석적 설교, 성서 전체를 조명하면 설교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서일과를 따라야만 성서적 설교자가 된다는 생각도 어떤면에서는 근거가 없습니다.

성서일과를 따르는 설교자들도 그의 근본적 자세가 성서적이지 않으면 설교본문만 성서일과를 따라
성서전체를 설교하는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의 설교본문을 자신의 목적에 따라 조종하는것입니다.

성서일과의 본문들은 평신도들로 하여금 예배속에서 낭독하게 하고 성도들이 설교자를 거치지않고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여과되지 않는 성서말씀을 듣게 하는것입니다.

그러나 설교자들을 통해 영감넘치는 창조적 계시적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설교는 반드시 예배속에
생명넘치는 불꽃으로 존재해야합니다.

단순히 성서낭독을 하고 그를 듣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계시를 접하게 하는 것은
항상 성도들에게 계시로서 다가가지 않습니다.
해석되고 설명되고 적용되고
설교자들을 통해
성도들에게 말씀되는
하나님의 진리와 위로의 말씀...
그것이 없는 교회와 있는 교회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설교자, 목회자의 절대적 존경과 권위는 바로 하나님과 성도의 중재자로서
진리의 계시의 중보자로서
두 계곡을 잊는 다리로서 역활을 할때
부여되는 것입니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설교사역은 시작과 끝입니다.
물론 목회자의 성품과 성도들과의 관계도 당연히 추가되어야 하지만 말입니다.

한국교회에 다시 설교의 불꽃이 타오르기를 소망합니다.

설교자들이 다시 기도의 골방으로 들어가고
오래시간 기도하면서 성령을 통해 말씀하시는 살아있는 계시로서의 하나님의 말씀
성도들에게 절대적 위로와 진리가 되는 강력한 말씀을 받아전하고

설교자들이 스스로 다시 영성적 개인적 성서읽기를 시작하고
수시로 메모하고

설교자들이 삶의 다양한 상황을 늘 면밀히 관찰하고 듣고 보고 다시 메모하고

설교자들이 풍성한 독서를 하면서 설교의 불꽃, 설교의 씨앗을 발견하고
메모하고..

그리고 설교초고를 과감히 쓰고.. 컴푸터로 그리고 출력하고
20번이상 읽으면서 수정, 교정, 추가, 삭제...하면서 설교를 자라게 하고
묶게하고...

이러한 설교들을 수십편씩 준비해놓고...

자신의 설교 도서관에 보관하고 필요한대로 그곳에서 뽑아 설교하고..

오늘날의 설교자들은 잘 교육받은 사람들입니다.
정보활용에 익숙한 사람들이고
주위에 엄청난 자료들이 널려 있습니다.

문제는 정보와 자료의 부족에 있지않고
설교의 불꽃이 있느냐에 있습니다.

불꽃이 있는 설교자들은 자료와 정보사용을 쉽게 빨리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방향을 잡은 돛단배같이 방향을 분명히 잡고 있기때문입니다.
어둔밤의 불꽃으로 설교준비의 어둔 밤을 선명하게 해쳐나갈수 있기때문입니다.

설교자들은 다시 창조적 설교를 회복해야합니다.

어떤 자료를 사용하는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눈부신 계시적 설교 듣기가 어렵습니다.

영성있는 설교자...

창조적 설교자... creativity

자유성을 회복한 설교자들...

다시금 교회를 회복시킬수 있는 설교자들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박희춘목사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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