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소스톰 설교학 연구소
title
  

|연구소 소개|
|공지사항|
|설교학연구실|
|수사학연구실|
|설교컨퍼런스|
|설교코칭스쿨|
|설교 동영상|
|추천 사이트|
|포토 갤러리|
|방명록|
|관리자|


독일에서 보내는 설교예화 모음 - Update: 현재 예화 No.17-
박희춘 목사  (Homepage) 2016-04-02 14:09:46, 조회 : 892, 추천 : 103

     -이곳의 예화들은 박희춘목사에 의해 독일어자료에서 번역되었습니다.-

1. 록펠러의 회심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다" 벧전 1:23

죤 록펠러(John D. Rockfeller 1839-1937)는 야심이 가득찬 젊은이였습니다. 록펠러가 석유회사에 취직한후 그는 남보다 월등하게 일을 잘 해냈습니다. 나이 33살에 이미 그는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53살에 이미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록펠러의 성공은 그의 건강을 댓가로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의 소화기관이 파괴되었습니다. 모든 머리카락이 빠졌나갔습니다. 그는 흉칙한 미라처럼 보였습니다. 주당 백만달러를 번들 그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눈앞에 죽음을 목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밤 그에게 한 빛이 찾아왔습니다. "너는 이세상을 떠날때 아무것도 가져갈수 없다, 단 일불도!" (Du nimmst einmal nichts mit, keinen Dollar!)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록펠러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는 자신의 돈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기 시작했고 록펠러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록펠러재단은 긴급한 도움이 하늘을 향해 호소하는 이 땅의 영역을 돕습니다.(wo die Not zum Himmel schreit!)

록펠러재단은 대학을 돕고, 병원을 세우며 선교단체를 지원합니다. 록펠러는 다른 사람들을 향한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말입니다. 나이 98살에 그는 사랑으로 충만한 심장(mit einem Herzen voller Liebe)을 가지고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고 성서구절  베드로전서 1:22-2.3, 고린도전서 5:6-8
예화출처: Neukirchener Kalendar 2016, April 1
번역:박희춘목사

2. 치유하는 평화

이집트에는 모든 무슬림들의 눈앞에 개신교 기독교 병원이 있습니다. 병원을 시작한 프레디 엘 바야디(Freddz El-Bazadi)는 그 병원이 단지 사람들을 치유할뿐만 아니라 무슬림과 기독교의 파괴된 관계를 치유하기를 원했습니다. 1996년부터  엘 카나틸(El-Qanatir)에 있는 그 개신교 병원 살람 클리닉(Salam-Klinik)은 기 지역의 교회들의 도움으로 많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최고의 수준에서 치유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은 독일의 튀빙겐에 있는 "독일 의료 선교회(Deutschen Institute fuer Aerztliche Mission)으로부터 도움을 지원받고 있습니다. 그 병원 이름자체가 프로그램입니다: 살람은 평화를 의미합니다. 그 병원은 엘 바야디의 아들을 회심하게 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는 나라에서 그리고 선교가 금지된 지역에서 우리는 우선적으로 이웃사랑의 실천(praktizierter Naechstenliebe)을 표현할수 있습니다.  의사들의 열정은 정치가 아니고 그들의 환자들입니다. 누가 압니까? 예수님과 그의 표현되고 전달된 사랑에 의해 무엇이, 그리고 누구가 다시 치유될수 있을지를 말입니다.

책소개: 요아킴 파이어아벤드: 기독교인이 되는것이 위험할때! 종교와 문화의 전쟁(Joachim Fezerabend: Wenn es lebensgefaehrlich ist, Christ zu sein. Kampf der Religionen und Kulturen) (Olzog Edition, Lau-Verlag). 기독교인의 박해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약 1억의 기독교인들이 박해, 핍박, 투옥과 고문을 받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런 상황에 놓인 기독교인들의 상태를 묘사하고 배경에 대해 질문합니다.

3. 사랑으로 가리라!

한 유명한 화가에게 알렉산더 대제의 초상을 그려달라는 부탁이 들어왔습니다. 역사속에 유명한 대제에 합당한 그리고 사실에 근거한 초상화를 그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제는 얼굴 이마에 흉칙한 상처가 있었습니다. 화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대제의 이마의 상처를 그려야 할까, 아니면 없애야할까? 대제에 맞는 이미지를 그리는데 고민이 생겼습니다. 화가는 얼마후 고민끝에 한 좋은 생각을 해냈습니다. 알렉산더 대제의 깊은 사색적 모습에 맞게 팔목으로 얼굴을 지탱하며 한 손가락을 내밀어 이마의 흉터를 가리는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들도 부족함과 실수가 있는 곳에 사랑의 손가락을 내밀어 가려야 할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과 실수를 드러내는 대신 그렇게 사랑의 손가락으로 가리는 것입니다. 손가락이 충분하지 않으면 손바닥으로 가리고 손바닥이 충분하지 않으면 팔로라도 형제의 부족함을 가립시다!

4. 감옥창살안의 자유!

"내가 감옥에 들어온것이 감사합니다!"  이런 고백으로 이전 독일의 투자 컨설턴트로 일했던 백만장자 요셉 뮬러(Josef Mueller)가 자신을 인터뷰하는 텔레비젼 방송의 사회자에게 말해서 듣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요셉 뮬러는 2005년에 수백만 유로의 재산 투자 사기혐의로 독일감옥에 들어왔습니다. 수년의 감옥생활을 해야했습니다. 외부적으로 볼때 감옥의 높은 담벽아래 자유가 없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살아있는 믿음을 감옥에서 발견했습니다. 회개와 실젝적인 재활이 그 결과였습니다. 감옥의 자유없는 상황이 그에게는 참 자유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감옥안에서 복음이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복음은 한 사람의 영혼에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하는 능력을 줍니다.복음은 인간을 자유하게 합니다.

5.아주 깊이, 아주 높이!

한 유대교 랍비에 대한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 랍비는 매일 아침기도시간 전에 이미 하늘에 올라간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 랍비를 비웃는 한 사람이 그 소문의 진실을 밝히기를 원했고 새벽미명이 트기전에 랍비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랍비가 아침 일찍 마치 나뭇꾼처럼 복장을 하고 숲으로 가는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랍비를 몰래 뒤따라갔습니다. 랍비는 숲속의 나무를 자르고 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등에 매고 한 가난하고, 병들고, 늙은 여인의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랍비를 비웃던 그 사람은 창문을 통해 랍비가 무엇을 하는지를 관찰했습니다. 랍비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오븐에 불을 지폈습니다.

후에 사람들이 랍비가 매일 아침기도 시간 이전에 하늘로 올라간다는 소문에 대해 그에게 물을때마다 그는 아주 진지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아닙니다. 랍비님은 하늘보다 더 높이 올라가십니다!"

6.그분은 모든것을 변화시킬수 있습니다 (Er kann alles wenden)

한 여인이 텔레비젼 토크쇼에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의 두 딸이 특별한 이유없이 전에 알지 못했던 한 사람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이 받아들일수 없는 잔인한 두 딸의 죽음은 또한 어머니인 이 여인의 삶도 파괴했습니다. 그 여인은 그 살인사건이후 병들게 되었고 더이상 일을 하러 갈수도 없고 가계를 꾸려갈수도 없는 상태에 떨어졌습니다. 그로인해 경제적인 어려움도 동반되었습니다. 여러 딜레마에 봉착했습니다. 더이상 삶을 지탱할수 없을때 한 친구가 도움을 제공했지만 그것도 역시 오래가지못하고 그 여인은 더이상 삶을 연명할수 없는 어려운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그때 그 여인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기도하는법을 배웠습니다. 슬픔에 깊이 잠긴 어머니는 이미 발생한 일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주님의 손안에 내려놓는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짐을 가볍게 질수 있게(Linderung) 되었습니다. 그여인은 다시 건강하게 되었고 후에 딸들을 살해한 살인자를 용서할수 있게 까지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 여인은 다시 자신의 삶을 완전히 정상적으로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토크쇼에서 이 ㅇ야기를 듣는 모든 사람들은 아주 조용했고 오직 감탄의 소리만을 들을수 있었습니다.(Nur das Staunen war hoerbar!)

7. 그러나 하나님안에서 부요합니다 (Dennoch reich in Gott)

우리가 모든것을 다 빼앗길때도 여전히 행복에 대해서 말할수 있을까요? 네덜란드의 에티 힐레숨(Ettz Hilesum)은 기독교 유대인으로서 그렇게 할수 있었습니다. 젊고, 유능하고 삶을 풍성하게 계획했던 그 젊은 여인 힐레슘은 순식간에 그녀의 행복했던 삶에서 모든것을 빼앗겼습니다. 1942년 나찌에 의해 체포되어 1943년 11월 30일 아우슈비츠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편지에서 그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삶을 부요하게(reich) 만드셨습니다. 나의 주님이시여! 저로 하여금 그것을 두손가듯히 담아 다른 이들에게 나누게 하소서. 나의 삶은 당신과 함께 멈춤이 없는 대화(Zwigespraech)로 가득했습니다. 밤에 제가 침대에 누울때 당신안에서 저는 안식을 누렸습니다. 때때로 제 얼굴위로 감사의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것은 저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제가 표현하기를 원했지만 항상 다시금 오직 한 단어로 돌와갔습니다: 주...님..!  나에게는 나의 내적인 풍성함이 항상 더욱 컸습니다.(innerer Reichtum)"

삶에서 희망을 잃으며 자포자기(verzagen)하는 영혼들에게 그녀의 삶의 이야기는 얼마나 감동(Vermaechtnis)을 주는지요!

8. 그리스도를 고백함(Christusbekenntnis)

독일의 한 여자가 한번 기독교 예배에 동참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해 들었습니다. 그를 통해 그녀의 삶에 한 빛이 들어왔습니다. 어렸을때 그녀는 독일의 샤머니즘 신인 "토르(Thor)"에 바쳐졌습니다. 그리고 그 샤머니즘적인 악순환속에서 무당으로 일해왔습니다. 그녀의 고객들은 그녀의 흑색마술을 통해 나쁜 영들을 물리치기를 원했습니다. 이제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이러한 어둠의 속박과 그러한 사람들로부터 놓여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여인의 이러한 해방을 향한 노력을 방해했습니다. 그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싸움은 계속되었고 그녀로부터 다른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녀는 실신상태에 떨어졌습니다. 오랜 시간후에 그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안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수년후에 어둠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항상 다시 과거의 어둠의 시간들을 회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경험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자신 스스로의 체험으로부터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나의 거룩하신 하나님!"

9.하나님께는 어떠한 절망도 없다(Beit Gott gibt es keine hoffnungslosen Faelle)

독일의 한 남자 로버트(Robert)는 수년 전에 깊은 수렁에 빠져있었습니다. 알콜에 중독되어 있었고 어떤 삶의 비젼(Lebensperspektive)도 없었습니다. 한 전화상담을 통해 그는 다시금 깨어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서 새로운 출발(Neuanfang)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전환(Umkehr)을 통해 인생을 새롭게 다시 시작한 이후에 로버트는 절망속에 있는 희망을 보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하나님안에 새로운 시작과 전환을 할수 있는 가능성이 오직 존재한다는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오늘날 로버트는 기독교 상담자로 감옥에서 사역합니다. 그 감옥에서 로버트는 사회의 변방에 있는(am Rand der Gesellschaft)를 돌보는 일을 합니다. 그들 옆에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정죄하지않고 귀를 열어 들어주며 "통곡의 벽(Klagemauer)"이 되어 함께 울어줍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자기 자신의 삶의 이야기와 어떻게 자신이 새로운 전환과 출발을 믿음을 통해 하게 되었는지를 말해줍니다. 로버트는 이러한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가끔 그는 실망도 경험합니다. 그렇지만 자주 절망속에 신음하는 영혼들에게 희망을 가져다 주고 그들의 삶을 변화하게 돕습니다. 로버트에게 이 한가지만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는 어떠한 절망도 없다!"

10. 기적의 알약

독일의 한 가정 의사가 정기적으로 한 환자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96세의 고령의 할아버지였습니다. 그 고령의 할아버지는 항상 만족스러워하고 친절했습니다. 어느날 그 의사가 그 할아버지에게 질문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비밀(Geheimnis seiner Freude)이 있길래 그가 그렇게 기쁨으로 살아가는지를 말입니다.  그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의사선생님, 저는 날마다 두개의 알약을 먹습니다. 그 두개의 알약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의사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할아버지에게 어떤 약도 처방해드리지 않았는데요? 두개의 알약이라니요?" 할아버지는 씩 웃으며 대답했습니다."의사 선생님은 저에게 어떤 약도 처방해주지 않았습니다. 의사 선생님, 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만족(Zufriedenheit)'이라는 알약을 먹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전에 다시 다른 한개의 알약 '감사(Dankbarkeit)'을 먹습니다!. 이 두 알약은 약효과가 항상 좋습니다" "아 그렇군요!" 의사가 대답했습니다. "할아버지의 그 두 알약을 계속 취하시도록 처방해드리겠습니다!"


11. 기억 훈련(Gedaechtnistraining)

우리는 우리가 어떤 것을 들을때 약 20 퍼센트를 기억합니다. 우리가 듣고 볼때는 50 퍼센트, 우리가 듣고, 보고 소리내서 반복하여 읽을때 70 퍼센트를 기억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가 어떤 것을 듣고, 보고, 말하고, 그것을 실제로 행할때 거의 90퍼센트를 기억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보가 인식작용들이 단기간의 기억으로부터 장기간의 기억으로 특별히 유효하게 전환되고 언제나 다시 기억할수 있게 됩니다ㅣ.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더 좋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것입니다. 즉 성경을 읽는것입니다. 더욱 좋게는 이미 읽은 말씀을 반복해서 읽는것입니다. 가장 좋게는 소리를 내서 읽는것입니다.  우리 자신이나 혹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가장 좋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고, 읽고, 그리고 행하는것입니다. 그렇게 할때 성경말씀은 특별히 우리 영혼안에 새겨집니다(einpraegen!). 그렇게 할때 위기의 상황에서 말씀은 역사를 합니다. 저녁에 다시금 기억합니다. 아침에 내가 고요함중에 읽은 말씀을 말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삶속에서 밝은 희망중에 살수 있게 됩니다.

12. 당신은 항상 거기에 계십니다                                        Du bist immer da!

저는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나의 주님이시여,   Habe Dank, Herr Jesus Christus, dass es keinen Augenblick
그 어떤 한 순간도 없습니다, 당신없이 살아야만 하는..       gibt, der ohne Dich gelebt werden muss.
당신은 항상 거기에 계십니다, 우리가 있는 곳,                 Du bist immer da, wo wir sind, in allen Hoehen und
우리 인생의 가장 높은 곳이나 가장 낮은 곳.                         Tiefen des Lebens.

그 어떤 기쁨의 한 순간도 없습니다, 그 기쁨안에 당신이 없었던.   Es gibt keinen Augenblick der Freude, in dem ich
그 어떤 고통의 한 순간도 없습니다, 그 고통속에서 당신없이        ohne Dich bin. Es gibt keinen Augenblick
저 혼자서 그 고난을 통과해내야 했던.            des Schmerzes, den ich ohne Dich durchleiden muss          

주님, 당신은 언제나 저의 현재속에 존재하십니다.             Du bist alle Zeit der Gegenwaertige, der mich liebt.
그리고 저를 사랑해주십니다.
         -한나 흄머 -                                                    -Hanna Huemmer-


13. 산 폴리(St. Pauli)의 예수

에릭 에쉬는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산 폴리의 작은 예수라고 부릅니다. 산폴리는 함부르크의 홍등가입니다.  에릭이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때 많은 청중은 고요해지고 숙연해집니다. 그리고 거친 삶을 산 그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에릭은 고아로서 이곳 저곳의 고아원을 떠돌아다녔습니다. 이미 어린 나이에 마약과 성 그리고 폭력에 노출되었습니다. 청소년시절 폭력을 일삼고 도둑질을 하였고 스스로 폭력을 당하기도 일수였습니다. 그리고 남자 매춘부(Strichjunge)로 가끔씩 수입을 벌기도 했습니다. 술과 마약은 그의 삶을 망가트렸고 그는 절망속에 암환자 병동에 마침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에릭은 주님을 향한 절규의 부르짓음과 함께 자신의 과거의 삶을 내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암세포가 사라졌습니다. 이제 그는 함부르크의 어두운 뒷골목에서 좌초한(Gestrandeten)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삽니다. 그리고 모든 영혼들에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삽니다.


14. 길바닥의 비석(Stolpersteine)

"길바닥의 비석"은 독일의 한 프로젝트의 이름입니다. 나찌에 의해 추방당하고 학살당한 유대인 남자 여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위해 수년전부터 독일과 다른 나라의 500개도 넘는 도시의 길바닥에 예술가 귄터 데니히에 의해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이 길바닥의 비석에는 그 유대인들의 이름과 추방되고 학살된 날짜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이 도시의 거리를 걸어갈때 그 길바닥의 비석위를 지나갑니다. 그 길바닥의 비석은 히틀러에 의해 차별받고,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한 수백만명의 유럽의 유대인 남녀를 기억하고 추모합니다. 1938년 대대적인 유대인 차별과 추방 작업(Reichspogromnacht )은 75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의 역사속에 이렇게 서있습니다. 후에 태어난 우리들은 그 길바닥의 비석위를 밟고 지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그 비석들은 동시에 인권에 대한 우리의 책임과 경각심을 위한 상징입니다. 그 길바닥의 비석(스톨퍼쉬타인 Stolpersteine)은 역사속에서 어떤 잔인한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잊지않도록 경각시켜줍니다. 그리고 유대인들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임을 자각시켜줍니다. 구약과 신약성서는 그에 대한 증거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사렛의 유대인 예수님에 의해서도 증거됩니다.

15. 넘쳐 흐르는 접시(Eine ueberfliessende Schale)

어떻게 우리는 복음과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수 있을까요? 기독교 영성주의자 끌레르보의 버나드(Bernhard von Clairvaus, 1091-1153)은 우리에게 한 교훈을 전해줍니다.  

"당신이 이성적이라면 당신 자신을 접시로 생각하고 운하(Kanal)로 생각하지 마십시요. 그 운하는 무엇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다시 다 내어줍니다. 우리가 다시 채워질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말입니다. 접시는 자신의 상처를 남에게 전달하지 않고 오직 차고 넘치는 것만을 남에게 나누어줍니다. 배우십시요. 오직 충만한데서, 차고 넘칠때 다른 사람들에게 부어주십시요.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나 된것처럼 모든것을 다 주려는 태도를 버리십시요. 접시는 원천을 본받습니다(Die Schale ahmt die Quelle nach). 먼저 자신이 물로 가득채워졌을때 강으로 그 물을 내어보내고 그 물은 강에서 다시 바다로 나아갑니다. 접시는 자신을 상처내지않습니다. 과도하게 마치 물의 근원(Quelle)이 되려고 하지않습니다.

나는 부유하게 되기를 원치않습니다. 당신에게 부족함이 있을때 말입니다. 당신이 먼저 당신 자신과 화목하지 못한채 당신은 누구를 도울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할수 있을때 당신의 충만함, 차고 넘침으로부터 나를 도와주십시요. 그러나 그렇게 않다면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십시요. 스스로를 다시 채우십시요(Wenn du kannst, hilf mir aus deiner Fuelle, wenn nicht schone dich!."

16. 감방번호 24 (Zelle 24)

니콜 발러리는 그녀의 나라 공산주의 루마니아에서 종종 발생한것처럼, 누군가 다른 사람의 거짓밀고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잔인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 고통은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했습니다. 한 의사가 그녀를 도와주었습니다. 더이상 버틸수 없는 절망의 순간에 그녀는 자신의 감방의 벽에서 한 성서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주님, 당신만이 저에게 이겨낼 힘을 주십니다. 당신만이 저를 이곳에서 구원해 내실수 있습니다!" 그 성서구절을 통해 니콜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감방 벽에 그녀 자신이 성서구절, 기도문,시편구절등을 써내려갔습니다. 훗날 인터뷰를 통해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철저한 절망속에서 나는 나의 감방벽에 써있는 말씀을 발견했습니다. 그 말씀을 감방 벽에 쓴 사람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감사하기를 원합니다. 그 말씀을 통해, 그 절망의 감옥의 벽에 적힌 말씀을 통해 나는 생명을 발견했고 나의 영적인 고향(geistige Heimat)을 발견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니콜은 계속해서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고향을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영적인 고향은 감방번호 24이었습니다. 내가 비참히 갇혔던 그곳이 바로 나의 영적인 고향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처절히 절망하고 더이상 움직일수 없는 아픔의 상태에 이른곳 바로 그곳이 우리의 영적인 새출발의 고향입니다.

17. 나의 아픔과 고난을 통하여

독일의 한 마을에 8살의 어린 소년이 아빠와 함께 강아지를 사기 위해 애견센타를 방문했습니다. 애견 센타의 주인은 손님에게 다섯마리의 새로 태어난 강아지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강아지들은 모두 한 바구니에 들어있었습니다. 얼마후에 이 소년은 한 강아지가 따로 분리되어있는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따로 분리된 강아지도 분명 다른 다섯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출생하였습니다. 그 소년은 물었습니다. "왜 저 강아지는 혼자 따로 있어요?" 애견센타 주인은 대답했습니다. "저 강아지는 태어날때 한쪽 다리가 짧게 태어났단다. 그래서 저 강아지는 항상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야 한단다. 필경 우리는 저 절뚝이는 강아지를 죽게 해야할 것이야(einschlaefern, euthanize)" 그 소년은 되물었습니다. "아저씨 저 작은 강아지를 죽일 계획을 벌써 세우셨어요?" 애견가게 주인은 대답했습니다. "이 강아지는 결코 어떤 아이들과 함께 달리거나 같이 놀수 없을거기 때문이야" 얼마후 그 소년은 아빠와 짧은 대화를 나눈후 애견 센타 주인에게 그 절뚝이는 강아지를 사겠다고 말했습니다. 애견 가게 주인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너는 같은 가격으로 다른 건강한 강아지를 살수 있는데 왜 그러니? 왜 너는 이 쓸모없는 강아지를 사려고 하니?" 답변으로 그 어린 8살 소년은 허리를 굽혀서 자신의 오른쪽 다리의 바지를 걷어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오른 발이 의족인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소년은 말했습니다. "저는 이 강아지를 사겠어요. 왜냐하면 저는 이 강아지가 겪어야(durchmacht) 할 아픔을 이해할수 있기 때문이예요.

우리는 우리가 겪는 고난을 통해, 아픔을 통해, 좌절하고 절망할것이 아니고 주님이 우리의 고난과 아픔을 통해 어떤 사명을 주시는지, 나와 같은 고난을 겪는 어떤 다른 사람들을 품고 섬기고 사랑하라고 부르셨는지를 돌아보아야 할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아픔은 오히려 축복이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우리의 고난을 승화시킬때!



  추천하기   목록보기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zero
Copyright : ck | Email : whrur@hanmail.net